퇴마사 협회 본부에 갈 일이 생겼다. 최근에 퇴마하고 난 뒤, 보고서를 안 냈기 때문에 몰아서 처리해야 한다. 오늘은 혼자 움직여야 할 거 같아서, 나는 가방을 메며 아인에게 집을 잘 봐달라고 부탁한다. 이제까지 살펴봤던 거로 그가 무언가 훔쳐 갈 사람은 아니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에 이런 부탁도 할 수 있다. 그다지 사람을 믿지 못하는 내 입장에서 이건 진보한 것이다.
"그럼 나갔다 올게요?"
"응, 걱정하지 말고 다녀와."
그는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배웅한다. 이제는 나갈 때, 인사를 받는 게 제법 익숙해졌다. 협회 건물은 우리 집에서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있다. 나는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 버스를 타고 본부로 향한다.
내려야 될 장소에 다다랐기에 벨을 누르고 버스에서 내린다. 목적지는 버스정류장에서 제법 가까운 곳에 있다. 우리 협회의 건물은 겉으로 보면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눈에 크게 띄는 간판도 없고, 특별한 모양을 한 것도 아닌, 보통 근처에서 볼 수 있는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8층짜리 건물이다. 입구에 조그마한 나무 현판 하나가 여기가 본부라는 표시를 낸다. 나는 그 앞에 서서 한숨을 쉰다. 아무리 생각해도 서류작성은 귀찮은 일이다. 그래도 안 할 수는 없는 일이기에 나는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기를 기다렸다가 안에 타 버튼을 누른다. 내가 가야 할 층은 6층이다. 빠르게 도착한 나는 입구 근처에 책상을 두고 앉아 있는 여자에게 가방에 담아온 종이 뭉치를 건넨다. 보고서를 밀리지 않고 미리 써놓아서 다행이다.
"여기, 보고서입니다."
"네, 성함이요."
그녀는 내 얼굴을 마주 보며 기계적으로 말한다. 언제나 이랬던 사람인지라 별 감흥은 없다. 나도 별 감정 없이 말한다.
"선우 진이요."
"…. 네, 접수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앞에 놓여있는 컴퓨터에 자판을 두드려 무언가를 입력하더니 이렇게 말한다. 이걸로 보고서 제출은 끝이다. 이제 볼일은 끝나서 돌아가려고 하는데 누군가 들어오는 게 보인다.
"이게 누구야?"
"…. 넌 어쩐 일이냐?"
별로 마주치고 싶지는 않은 녀석을 만났다. 검은 머리카락은 이마를 가리고 뒷머리는 단정하게 자른 상태고 눈매가 약간 날카로우며 코는 그다지 높지도, 낮지도 않고 턱선이 조금 가는 얼굴을 가진 제법 잘생긴 남자다. 키는 대략 180cm 정도 되어서 내가 약간 올려다봐야 하는 게 뭔가 짜증 나곤 한다. 오늘은 하얀 면티에 조금 붙는 청바지를 입고 검은 가방을 메고 왔다. 저 녀석은 다른 사람에게는 평범하게 대하면서 나에겐 조금 신경질적인지라 만나기만 하면 으레 싸우곤 한다.
"나야 보고서 내려고 왔지."
그의 손에 들려있는 종이 뭉치가 그제야 눈에 들어온다. 나랑 같은 목적이었나? 이상하게 그와 나는 움직이는 때가 비슷해서 자주 마주치곤 한다. 이러는 게 좀 싫긴 하다. 그래도 그가 얼마 전, 나와 가브리엘 사이를 연결해 준 공이 크기 때문에 최대한 친절하게 대하려고 노력해야지.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그가 나에게 질문을 한다.
"그러는 넌 어쩐 일이냐?"
"나도 보고서 내러…."
"우리는 어째 맨날 이렇게 하는 게 겹치냐? 이 정도면 보통 인연이 아닌 거 같긴 한데?"
그는 나를 바라보며 키득거린다. 나도 그의 이야기가 묘하게 웃긴 거 같아 웃고 만다. 그러고 보니 아직 이 녀석한테 그때 일에 대한 보답도 못 했지? 지금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 나는 그에게 말을 건다.
"야, 한 소월."
"응?"
그는 보고서를 내려고 책상 앞으로 다가가다 내가 부르자 고개만 돌려 쳐다본다.
"오늘 시간 되냐?"
"…. 비어있기는 하는데 왜?"
한 소월은 조금 생각해보는 것 같더니 시간이 있다고 한다. 그러면 됐다 싶어 나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면 점심이라도 같이 먹으래? 내가 살게."
"네가? ‥.. 그러지 뭐."
그가 잠시 침묵하더니 나랑 점심을 먹겠다고 대답을 하고는 보고서를 내는 일을 마저 하고 내 앞에 선다. 저렇게 순순히 따라온다고 할 줄은 몰랐기에 나는 조금 당황했다. 그러자 한 소월은 나를 보며 재촉을 한다.
"야, 뭘 멍하니 그러고 있어?"
"어…. 알았어."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건물을 나서며 뭘 먹을지 정한다. 그가 아무 데나 근처에 있는 곳으로 가자고 하기에 우리는 본부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향한다. 식당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한 소월이 입을 연다.
"웬일로 네가 나한테 밥을 산다고 그러냐?"
"저번에 연락처 가르쳐준 거 있잖아? 그거의 답례."
"아, 그거?"
일단 먹을 것을 시키고 마저 이야기하기로 한다. 내가 주문을 하는 사이에 한 소월이 두 사람 몫의 물을 떠다 가져온다. 직원이 주문을 받아 가고 우리는 대화를 잇는다.
"그거, 도움은 됐냐?"
"덕분에 해결했어. 그래서 고마우니까 사는 거야."
"뭐, 잘 먹을게."
한 소월은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감사를 표한다. 평소에도 이렇게 대화가 잘 흘러가면 서로 좋을 텐데…. 이렇게 평범하게 대화를 하는 게 어색할 정도로 우리는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다. 그때도 그래서 고민을 했는데, 부탁을 들어줘서 의외라고 생각했다. 왜 부탁을 들어줬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내 부탁은 왜 들어줬어?"
"들어줘도 난리야? …. 그 문양을 보여주는데 평범한 게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랬지."
"역시 그거, 문양으로밖에 안 보이냐?"
그는 내 질문에 잠시 말을 멈추더니 떠온 물을 들이켠다. 그러더니 얼굴을 조금 찡그리곤 말한다.
"난 처음엔 뭔 이상한 그림을 보냈나 했지. 그런데 네가 하도 절박해 보이길래 전달한 거야."
너무 당황해서 보내긴 했는데, 내 문자가 절박해 보일 정도였나? 내가 그의 말을 곱씹고 있자 한 소월은 나에게 질문을 한다.
"그래서 그건 뭐였냐? 나도 궁금하긴 했는데…."
"아, 그건…."
순간 말을 해도 될지 망설여진다. 아무래도 가브리엘이 그 글의 내용은 가르쳐 주지 않았나 보다. 하지만 이걸 말한다고 저 녀석이 믿을지도 모르겠고, 그 이전에 이걸 남에게 말해도 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우물쭈물하자 그는 재촉한다.
"야, 뭐냐니까?"
"그게…. 듣고 뭐라 그러지 마라?"
"알았으니까 빨리!"
꽤 궁금한지 그의 목소리가 조금 커진다. 나는 물 한 모금을 마시고, 숨을 몰아쉬며 말할 준비를 한다. 한 소월이 나를 빤히 쳐다보는 걸 느껴서 왠지 부담된다. 어디서부터 말을 해야 하는 걸까? 일단 제일 궁금해하는 부분부터 이야기한다.
"내가 어떤 책을 봤는데 첫 장에 그게 쓰여있었거든. 읽어지긴 하는데 내용이 이해가 안 가서 그랬던 거야."
"대체 무슨 내용이었길래 그랬냐?"
"제1차원에 기록자를 보냈는데, 혼자서 외로울 것 같아서 글을 읽을 수 있는 영혼을 만들었다는 내용."
"…. 그게 뭐야. 그래서 그 글을 읽을 수 있는 영혼이 너라고?"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표정을 살핀다. 한 소월의 안색은 역시나 굳어진다. 나라도 갑자기 이런 말을 들으면 황당할 것 같은데, 저 녀석이라도 오죽할까? 아무리 퇴마사가 평범한 삶과는 거리가 멀게 산다고 해도 이런 이야기는 한 번에 믿기 어렵다. 그런데 그는 갑자기 이마를 짚으며 말한다.
"나도 요즘 이상한 녀석들이랑 자주 만나긴 하는데, 너도 참…."
"넌 뭔 일이 있었길래 그러냐?"
그의 표정이 왠지 다채롭게 변한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러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때, 직원이 우리가 시켰던 것을 쟁반에 받쳐 들고 가까이 오기에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 음식을 받는다. 나는 라면에 김밥, 한 소월은 돈가스를 시켰다. 우리 앞의 음식은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지만, 그는 음식을 바로 먹을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나는 그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아니, 아무리 봐도 이상한 기운이 흐르는 남매를 만난단 말이야? 내가 전화번호 넘겨준 애 말이야. 그게 남매 중에 동생이거든. 그런데 그 남매가 자기들을 신이라고 하는 거야. 그게 말이 되냐?"
"아…."
무슨 이야기를 하나 했더니 가브리엘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러고 보니 처음에 봤을 때, 기운을 읽을 생각은 못 해봤다. 그랬으면 그의 말을 더 쉽게 이해했을지도 모르겠다는 후회가 든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며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자, 그가 되물어온다.
"말을 들었으면 무슨 대답이 있어야지. 아는 무슨…."
"그거, 거짓말 아냐."
내가 한 소월의 말을 자르고 대답을 하자 그의 표정이 불만 가득하게 변한다. 이렇게 보니 저 녀석도 감정 표현이 다양한 녀석이었구나. 평소에는 굉장히 차갑게 이야기해서 감정도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말이다.
"자기가 신이라는데 그게 거짓말이 아니라고?"
"네가 직접 그 문자로 말하는 걸 들어보면 알걸? 나는 듣자마자 알겠던데…."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서 나도 모르게 몸이 주체를 못 하고 계속 떨린다. 그런 나를 보는 한 소월의 눈이 날카롭게 변하더니 나를 걱정해준다. 이 녀석이 날 걱정할 줄은 몰랐는데…. 왠지 모르게 실소가 나온다.
"야, 왜 그래?"
"그때가 생각나서 그래. 가브리엘의 집에 직접 찾아갔었거든."
"가브리엘? 아…. 그러고 보니 류수민이 자기를 그렇게 말했던가?"
아무래도 그 신은 인간으로서 류수민이란 이름을 가진 모양이다. 전에 집으로 찾아갔을 때도 그 이름을 들었던 것 같은데….
"아무튼 찾아갔을 때 신의 언어를 직접 들었거든. 그걸 듣자마자 나도 모르게 무서워서 꼼짝도 못 했어."
"네 상태를 보니 그런 거로 거짓말하는 것 같지는 않고…. 나중에 한 번 물어봐야겠네."
그는 내 말을 진지하게 듣는 것 같다. 아무래도 뭔가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었으니까 내 말을 편견 없이 듣는 거겠지. 한참을 이야기하다 내가 시킨 라면을 보니 면발이 좀 불어있다. 그제야 나는 젓가락을 들어 면을 집어삼킨다. 내가 음식에 손을 대기 시작하자 한소월도 자신의 몫에 손을 댄다. 그는 집중해서 고기를 써는 것 같더니 나에게 다시 질문한다.
"그러고 보니 그 책은 어디서 난 거야?"
"…. 내가 얼마 전에 어떤 사람을 집에 데리고 왔는데, 그 사람이 갖고 있던 거야."
"너, 뭘 하고 다니는 거야."
내가 라면을 먹다가 그렇게 말하자 돈가스를 썰다 말고 나를 쳐다보며 황당해한다. 그는 내가 원래 혼자 사는 걸 안다. 내 사정은 퇴마사 사이에서도 꽤 유명하니까.
"아니, 그게…."
"그 사람, 모르는 사람이지?"
"그렇긴 한데 골목에서 비까지 맞으면서 앉아있길래…."
내가 왜 변명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분위기가 해야 할 것 같다. 한 소월은 말없이 돈가스 조각을 한입에 넣더니 한참을 씹어서 넘기곤 굳은 표정으로 말한다.
"내가 왜 네 가정사에 참견해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생판 모르는 사람을 그렇게 집에 함부로 들이는 거 아니다."
"…. 알고 있어. 그래도 불쌍해 보였단 말이야."
"휴, 내가 너한테 뭔 말을 하겠냐? 그래서 그 사람은 왜 그러고 있었데?"
"나를 쫓아오다가 건물 옥상에서 떨어졌었대."
내가 이 말을 하자마자 그가 다시 황당해한다. 나도 처음에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황당했었는데…. 나는 아무 말 없이 김밥을 한 개 집어 먹는다.
"야, 넌 그 말을 믿냐?"
"지금도 안 믿긴 하는데, 그래도 갈 데가 없는 거 같아서 같이 지내고 있어."
"그렇게 안 봤는데 동정심이 하늘을 찌르겠구먼?"
한 소월은 그 말을 끝으로 음식을 먹는 데 집중한다. 나는 내 몫을 거의 다 먹어서 그가 다 먹기를 기다린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도 자신의 몫을 다 먹었기에 계산을 하고 우리는 식당을 나선다.
"잘 먹었다."
"그래."
짧게 감사 인사를 받고 우리는 헤어지기로 한다. 더 할 이야기도 없고, 그다지 친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런 것치곤 오늘 대화는 평범하게 했지만 말이다. 귀신을 소멸시킬 때만 아니면 한 소월과 이렇게 평범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나는 그와 헤어져서 버스정류장을 향해 걸어가 버스를 타고 다시 집으로 향한다.
집에 도착해 문을 열자 현관에서 아인이 나를 반긴다.
"잘 다녀왔어? 점심은?"
"먹고 왔어요. 당신은요?"
"나는 괜찮아."
아무래도 또 안 먹은 모양이다. 하지만 저번에 설명해준 게 있어서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는다. 그가 괜찮다면 괜찮은 거겠지. 나는 가방을 내 방의 벽에 걸어놓고 방을 나와 거실에 있는 소파에 앉는다. 그러자 그도 내 옆에 다가온다.
"일은 잘 해결했어?"
"네. 그냥 보고서만 내면 되는 일이었으니까요."
나갔다가 오니 별일을 안 했는데도 피곤한 느낌이다. 오늘도 나가서 퇴마 일을 해야 하니 이 틈에 자야겠다. 소파에서 일어나 방에 있는 침대로 향하자, 그는 나를 보며 질문을 한다.
"자려고?"
"네. 일하러 나가기 전에 좀 자두려고요."
"그래. 잘 자."
미소를 띠며 인사를 하는 그를 뒤로하고 방에 들어와 바로 침대에 눕는다. 베개를 베고 눈을 감고 있으려니 금세 정신이 아득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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