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의심 by rwine

 아인과 같이 지낸 지 이틀이 지나 월요일이 됐다. 우리 집에서 함께 살기로 했던 그 날, 우리는 규칙을 정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그가 대뜸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이었다.

 "내가 너희 집에 얹혀사는 거니까 집안일은 내가 할게."

 당연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서 둘이 신경전을 치렀다. 하지만 결론은 그의 승리였다. 집에 얹혀산다고 일을 하겠다는 그의 고집을 아무리 해도 꺾을 수가 없었다. 다시 생각해 봐도 찝찝한 결말이다. 이렇게 보니 내가 진짜 식모를 들인 것 같잖아? 그렇다고 그를 이기기엔 고집이 너무 셌다.

 그리고 그의 일과 중 특이한 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인은 하루에 한 번, 책에 글 쓰는 시간을 가진다. 그는 품에서 무색의 투명한 구슬을 꺼내 들었다. 그건 뭐냐는 나의 질문에 그는 어제 놓치고 못 쓴 걸 보여주는 물건이라고 했다. 구슬을 손에 들고 그가 눈을 감자 이윽고 그것이 약한 빛을 발했다. 아인은 잠시 집중하는 듯하더니 눈을 뜨고 책에 글을 적기 시작했다.

 무엇을 쓰는지 궁금해서 빤히 쳐다보니 그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그냥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그날 일어난 사건, 사고 같은 걸 적었다. 예를 들자면 한 나라에서는 어떤 작전이 있었는가 같은 아주 큰 사건부터 굉장히 잡다한 것까지 적혀 있는 것이다. 아주 자세하게 적는 게 신기해서 왜 그런 것까지 쓰는지 물어봤더니 그는 이렇게 말했었다.

 "어머니께서 차원의 모든 것을 적어오기 원하셨어.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기록할 가치가 있다고 하셨으니까 적는 거야."

 그때 갑자기 궁금한 게 생겨서 그에게 물어봤다.

 "만약에 내가 이걸 사람들에게 알리면 어떻게 할 거예요?"

 "어차피 증거도 없이, 단 한 인간이 말하는 걸 믿을 사회가 아니지. 이전에 네가 말한 데로 그런 적이 있었는데, 별로 믿는 인간은 없었어."

 그는 당연하다는 듯 이렇게 말했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그런 말을 한다고 믿어줄 만한 사람도 없을 것 같았다. 혹시 나중에 그런 생각이 떠올라도 실행해도 큰일이 날 것 같아서 하지 않기로 했다.

 아인은 그렇게 책에 글을 쓰는 잠시의 시간을 제외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청소나 빨래, 식사 준비 같은 것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나는 일요일 하루 동안 텔레비전을 보거나 휴대전화를 보는 척하며 그를 살폈는데, 특별히 수상한 기색은 없었고 오히려 집안일에 열중하는 것이었다. 오죽하면 내가 좀 쉬라고 말릴 정도였다.

 그는 쉴 때도 정자세로 앉아 그다지 편하게 늘어져서 쉬지는 않았다. 물어보니까 아무래도 밖에서 지낼 때, 특유의 버릇인 것 같았다. 밖에서 지내면 위협이 많으니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선 무슨 야생동물 같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그에게 열심히 일할 필요는 없으니까, 쉴 때는 확실히 쉬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내 말에 고개만 끄덕거렸다.

 오늘은 내가 일을 나가야 하는 날이다. 내 일은 늦은 밤에 시작되니까 낮 동안은 푹 쉬어둬야 한다. 그는 내가 깨어날 때까지는 방문을 두드리지도 않았다. 아무래도 나에 대한 걸 안다는 건 사실인 모양이다. 조금 일찍 깨어났지만, 침대에서 뒹굴뒹굴했다. 그러다 4시가 되어 씻으러 방을 나서니 그가 가만히 소파에 앉아있는 것이 보인다. 쉬고 있는 건가? 의외로 이런 거는 말을 잘 듣는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앉아만 있으면 심심하지 않아요? 아무거나 마음대로 해도 괜찮으니까요."

 "마음대로…. 알았어."

 그는 잠시 생각을 하는 것 같더니 미소를 짓는다. 나는 그런 그를 내버려 두고 화장실로 들어간다. 간단히 샤워하고 보니 옷을 들고 오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혼자 살던 버릇이 이럴 때 나오다니…. 수건으로 중요한 부위만 가리고 밖으로 나가려고 문을 여니, 앞에 옷과 속옷이 반듯하게 개어 있는 게 보인다. 아무래도 아인이 이렇게 해둔 모양이다. 옷을 가지고 다시 들어가 입고 나온다.

 "안 그래도 잊어버리고 들어갔는데, 고마워요."

 "별말씀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이야기하지만, 그의 눈썰미가 대단하다는 걸 느낀다. 나라면 놓치고 말 것 같은데 금방 눈치를 채고 준비를 해두다니…. 집안일 하는 것도 봤지만 먼지 하나 없이 청소하는 걸 보고 느꼈던 걸 말한다.

 "이 정도면 완벽한 신랑감인데…. 혹시 결혼은 안 했죠?"

 "해본 적 없어."

 "이런, 쓸데없는 말을 했네. 미안해요."

 나를 바라보며 딱 잘라 말하는 그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하는 게 보여 재빠르게 사과를 한다. 그러자 그의 표정은 금세 원래대로 돌아갔다. 아마 크게 잘못한 건 아닌 모양이다. 그래도 말실수를 한 건 사실인지라 민망해져서 얼른 방으로 들어간다. 얼굴이 빨개진 것 같아 침대에 엎어져 발을 찼다. 대체 왜 그런 이야기를 한 건지 부끄럽다.

 한참을 그러고 있었더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그의 말소리가 들린다.

 "밥 차려 놨으니까 먹고 가."

 나는 조용히 문을 열고 그의 말대로 밥을 먹기 위해 식탁 앞에 앉는다. 오늘도 없는 살림에 먹음직스럽게 준비를 해주었다. 따뜻한 밥에 소시지볶음, 김치, 감자조림…. 간편식만 먹던 내 밥상이 이틀 만에 이렇게 변하다니 어찌 보면 감격스러울 정도다.

 "잘 먹겠습니다."

 "응. 천천히 먹어."

 그의 말이 왠지 다정하게 들린다. 내 착각인가? 그는 말없이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날 쳐다볼 뿐이다. 또 그의 몫이 없다. 나는 그에게 직접 물어본다.

 "왜 밥을 차릴 때마다 당신 몫이 없는지 물어봐도 돼요?"

 그는 아차 싶었던지 표정을 조금 찡그린다. 처음엔 그렇게 안 봤는데 표정 변화가 많은 사람인 것 같다. 잠시 고민하던 그가 나에게 왜 그런지 설명을 해준다. 

 "내 신체는 특별하게 만들어서 먹을 것을 먹지 않아도 유지할 수 있어. 오히려 너무 많이, 자주 음식을 먹으면 몸이 고장 나."

 "보통 사람이랑 똑같이 생겼는데도요?"

 "그거야 인간이 겁먹지 않게 하려고 만든 외형이니까. 하지만 속은 비교해보면 다른 거야."

 그러면서 말해주길 원래 신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이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이형이라는 건 단순히 다르다 정도가 아니라 우리 인간이 이해하기 힘든 범주의 형태라는 의미란다. 그래서 이해하기 힘든 걸 본 인간은 그 자리에서 미치는 게 보통이라, 신은 인간의 외형과 똑같이 자신을 꾸미는데 자신도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라고 그가 말했다. 아직도 믿기 힘들지만, 본인이 그렇다는데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이제는 딴지를 거는 게 더 피곤한 느낌이다.

 어찌어찌 밥을 다 먹고 양치질까지 하고 나니 시간은 벌써 7시를 가리킨다. 이제는 슬슬 나가봐야 할 시간이기에 나는 짐을 챙겨 나가며 아인에게 인사를 한다.

 "나갔다 올게요. 잘 있어요."

 "오늘도 무사하길 빌게."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다 아는지 그는 아무 질문 없이 현관까지 나와 나를 마주 보고 기도를 해준다. 난 그 기도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집을 나선다. 그래도 내심 기쁘긴 하다. 내가 무사하길 빌어주는 건 처음 받아본다. 배웅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왠지 가족이 있는 사람의 기분을 이해하는 느낌이다.

 집을 나와 버스를 타고 목적지로 향한다. 아직 운전을 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니 어쩔 수 없이 이용하는 거지, 내가 만약 어른이면 직접 운전을 해서 다닐 것이다. 저녁 시간이 되니 사람이 좀 많다. 겨우 자리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니, 불빛들이 지나가며 눈을 부시게 만든다. 오늘은 제법 멀리까지 나가야 하니 눈부심을 막으려 잠시 눈을 감는다.

 눈을 감으니 잡생각이 나기 시작한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아인에 대한 것이다. 더는 아무 말 하지 않고 그냥 지켜보고 있지만 하는데, 아무리 머리를 돌려봐도 정체를 모르겠다. 덕분에 쉬는 날이었는데도 제대로 쉰 기분이 나지 않는다. 뭐, 이건 내가 자초한 거니까 어쩔 수 없나?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에 대한 걸 머릿속에서 지우려 노력한다. 지금은 일하러 가는 길이다. 그것에만 집중하자. 오늘 의뢰는 어느 건물에 있는 귀신을 퇴마하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건물의 특정 방에서 이상한 일이 자주 일어난다는 의뢰이다. 방 하나가 그런 것이라면 그곳에 있는 지박령때문인 경우가 많은데 혹시 모르니 이것저것 챙겨오긴 했다. 사실 지박령 퇴치는 내 특기가 아니지만, 협회에서 배정했으니 어쩔 수가 없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버스가 목적지에 도달한다. 얼른 벨을 누르고 내릴 준비를 한다. 버스에서 내려 휴대전화를 꺼내 시간을 보니 8시에 가깝다. 미리 연락받았던 데로 천천히 걸어간다. 버스 정거장에서 5분 거리 안에 있는 그 건물에 도착하자마자 벌써 기묘한 기분이 든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무언가 얽혀있다. 건물의 외견은 일반적인 원룸 건물이다. 입구에 사람이 한 명 서 있다. 백발에 키가 좀 작은, 남색 골프 티셔츠에 베이지색 바지를 입은 노인인데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혹시 의뢰인입니까?"

 내가 말을 걸자 그 노인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본다. 평소에 많이 받는 '이렇게 어린 애가 해결이나 할 수 있냐'는 의심하는 시선이다. 복장을 최대한 어른스럽게 입으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기에 17살은 좀 어리니 어쩔 수 없다. 이래서 어릴 때부터 최대한 빨리 자라고 싶었는데…. 노인은 퉁명스럽게 혀를 차며 말한다.

 "쯧, 의뢰인은 맞는다만 너 같은 녀석이 뭘 할 수나 있겠냐?"

 "…. 할 수 있습니다."

 "말은 아무나 할 수 있지. 거기에다 다시 연락해야 하나?"

 "연락하셔도 원칙상 배정받은 걸 바꿀 수는 없으니, 일단 제가 상황을 보고 해결할 수 없으면 다른 사람에게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설명하니 노인은 그래도 빠르게 포기하는 것 같다. 어떨 때는 전화해서 못 믿겠으니 빨리 바꿔 달라는 사람도 있는데, 그래도 말이 통하는 상대라 다행이다. 방 위치를 알려달라고 하자 그는 순순히 문을 열어준다. 5층 건물인데 목표는 3층에 있다고 한다. 이야기를 자세히 해달라고하니 노인이 대뜸 이렇게 말을 한다.

 "나는 잘 모르겠는데, 입주만 했다 하면 사람들이 한 달을 못 버티고 나가니 이건 뭐 돈도 못 받아먹고 미치겠어."

 "알겠습니다."

 나는 그냥 짧게 대답하고 말을 줄인다. 별로 도움은 안 되는군. 직접 경험한 게 아닌 이상은 다들 이렇게 말하는 것이 보통이다. 기왕이면 많은 정보가 있는 게 좋은데 어쩔 수 없지. 직접 부딪히며 해결해야 할 거 같다. 그 노인은 집주인인 모양인지 이젠 나에게 신세 한탄을 한다. 나는 그걸 한 귀로 흘려들으며 3층으로 올라갔다. 이윽고 우리는 집 앞에 도착했는데, 불길한 기운이 닫힌 문 앞에 섰는데도 느껴진다.

 "여기야."

 "…. 이제 가셔도 됩니다. 시끄러울 수도 있으니까 밑층에 사는 사람에게 미리 말을 좀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는 미리 언질을 주고 집 열쇠를 받아든다. 노인은 알겠다며 계단을 타고 내려간다. 숨을 몰아쉬고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간다. 문을 열자 보이는 건 평범한 원룸이다. 일단 거실에는 물건이 하나도 없고 욕실도 마찬가지다. 부엌에도 특별한 것은 없다. 그런데 차가운 기운은 들어오자 더 강해진다. 물건에 쌓인 기운은 아닌 것 같고, 아무래도 집 자체에 모인 기운 때문인가보다.

 왜 이렇게 기운이 쌓인 건지 모르겠으니 일단은 천장 근처에 부적을 붙이기 시작한다. 이 부적이 기운을 흩어지게 할 것이다. 기운이 풀어지길 기대하고 부적을 한 장씩 붙이고 있자니 등 뒤에서 누군가 우는 소리가 들린다. 급하게 돌아보니 기운에 얽혀있는 귀신이 보인다. 아무래도 저 귀신은 지박령인 모양이다. 지박령은 보통 장소에 미련이 얽혀있어 저렇게 된 경우가 많다.

 나는 일단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기로 한다. 귀신은 고개를 숙이고 있어 얼굴을 볼 수 없지만, 옷차림을 보니 여성인 것 같다. 귀신은 편안한 운동복 차림이다. 외형적으로 특이한 거라면 목에 밧줄이 묶여있다는 것이다. 밧줄은 바닥에 길게 늘어져 있지만, 아무래도 목을 단단히 조이고 있는지 우는 소리가 숨이 넘어가는 소리같이 들리기도 한다.

 귀신은 내가 있다는 걸 이제야 눈치챈 건지 고개를 천천히 들기 시작한다. 이윽고 나를 마주 보는 귀신의 얼굴은 아주 창백하고, 눈은 하얗게 뒤집혀 있고, 혀가 조금 입 밖으로 빠져있다. 그렇게 바라봐야 흔한 상황이기에 내가 겁을 먹을 리는 없다. 천천히 일어나기 시작하는 귀신은 금세 비틀거리며 나에게 다가온다. 얽혀있는 기운이 가까워지자 몸이 더 차가워진다. 이것도 이미 익숙하다.

 나를 잡으러 다가오는 걸 피하며 귀신의 이마에 부적을 붙인다. 그러자 귀신은 괴로워하기 시작한다. 기회를 잡은 나는 원룸을 둘러싸는 형태로 부적을 다시 붙인다. 아까 붙인 부적에 이어 바른 위치에 붙이면 저 귀신에 얽혀있는 기운이 풀려나갈 것이다. 괴로워하던 귀신은 나에게 빠르게 덤벼든다. 가볍게 뛰어다니며 피한다고 했지만, 좁은 방 안에서 그걸 완벽히 피하기는 힘들어 결국 왼쪽 손목을 붙잡힌다. 강하게 잡힌 부분이 아려오기 시작한다. 그래도 멈출 수는 없다. 귀신은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니까.

 잡힌 쪽 팔이 떨어질 것 같지만 귀신을 무리해서 끌고 마지막 부적을 붙인다. 그러자 차가운 기운이 점점 흩어지는 게 느껴진다. 이제 귀신을 퇴치할 차례다. 나는 부적을 귀신의 손과 발에 붙인다. 자신을 묶어둔 기운이 풀리는 데다 직접 부적까지 붙이니 귀신이 움직임을 멈춘다. 마무리로 몸에 부적을 붙이자 부적들이 타들어 간다. 그러자 귀신은 괴로워하며 점점 사라진다.

 나는 한숨을 쉬고 내 손목을 바라본다. 거기에는 퍼렇게 손자국이 남아있고, 꼭 차가운 칼에 베인 것 같이 시리고 아프다. 하지만 거기에 신경 쓸 겨를은 없다. 지박령이 완벽하게 사라진 걸 확인하기 전에는 안심할 수 없다. 주변을 둘러보니 차가운 기운은 이미 없어졌다. 귀신도 보이지 않는 걸 보니 일단 해결은 한 모양이다.

 일단 나가서 집주인을 찾았다. 다행히 멀리 가지는 않아서 금방 발견했다. 나는 그에게 방에 붙인 부적은 한 달 뒤에 떼면 된다고 이야기하고는 자리를 뜬다. 일이 다 끝나고 그제야 손목에 눈이 간다. 아무래도 이건 좀 오래 갈 것 같은 느낌이다.

 다시 버스를 타고 한참 걸려 집에 도착한다. 문을 열자 현관에서 아인이 나를 반긴다. 그가 내 몸을 살피는 게 느껴진다. 그러다 그의 눈이 내 왼쪽 손목에 고정된다.

 "다친 거야? 괜찮아?"

 "…. 괜찮아요."

 이렇게 말하자 그는 내 손목을 붙잡아 조심하며 들어 올려 살핀다. 그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만난 지 이제 이틀 지났는데, 챙기는 게 아주 옛날부터 알았던 사람 같다. 뭔가 알고 저러는 건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그가 나의 오른 손목을 잡고 거실의 소파로 끌고 간다. 거기다 날 앉히고 급하게 구급상자를 들고 온다. 저런 약으로는 치료할 수 없는데도 말이다.

 그는 나에게 다가와 다시 왼쪽 손목을 가볍게 잡는다. 아파서 무의식적으로 얼굴을 찡그리자 그의 표정도 더욱 일그러진다. 그러더니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 내 손목을 잡은 왼손 위에 얹고 중얼거리기 시작한다. 그러자 그의 손에 차가운 기운이 뭉친다. 이게 뭔가하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니 그 기운이 내 손목을 감싸더니 이내 사라진다.

 "다 낫게 하지는 못하지만, 이 정도는 할 수 있으니까…."

 그는 이렇게 말하며 손목에 붕대를 꼼꼼하게 감는다. 아무래도 그에게는 영적인 상처를 치료하는 능력이 있는 모양이다. 손목이 훨씬 덜 아프다. 얼이 빠지는 느낌이지만 일단 감사는 해야 한다.

 "…. 고마워요."

 "천만에."

 그는 치료는 다 끝났다며 푹 쉬라고 하면서 나를 방으로 밀어 들여보낸다. 아무래도 그의 말을 듣는 편이 나을 것 같아 아무 말없이 방에 들어와 침대에 눕는다. 대체 방금 그건 뭘까? 그런 생각을 하며 눈을 감고 있자니 금세 잠들었다.

 …….

 진이 다쳐서 들어왔다. 이전에도 이런 적이 많이 있었지만, 그런 걸 볼 때마다 내 마음이 아프다. 그래도 예전에 배워둔 마법이 도움이 돼서 다행이다. 이럴 때를 위해 배워둔 것이지만 웬만하면 사용하는 일이 없기를 바랐는데…. 역시 기도만으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음에는 나도 고집을 좀 부려서 같이 따라가야 하려나? 데려가 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이야기는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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