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결정 by rwine

 눈을 뜨니 하얀 천장이 보인다. 어제 너무 머리가 복잡해져 그냥 자버렸지. 바로 침대에서 일어나 휴대전화를 확인해본다. 시간은 토요일 아침 9시 13분이다. 회장님한테는 답이 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장난 문자라 생각하고 답을 보내지 않으신 모양이다. 하지만 그 녀석은 답을 보내줬다. 역시 믿을 건 친구인가? 사실 친구라 하기엔 사이가 좀 나쁘지만….

 '이거 글자가 맞긴 해? 무슨 문양만 있는 것 같은데…. 혹시 모르니까 내가 아는 애한테 물어볼게.'

 아무래도 그 녀석한테는 이게 글자로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역시나 그런가? 얼핏 보면 내가 보기에도 문양 같아 보이긴 하니까 말이다.

 지금 밖에 나가도 그 이상한 인간과 마주칠 게 뻔하니 다시 침대에 드러눕는다. 사람 하나 불쌍해 보인다고 데려왔다가 이게 무슨 봉변인지 모르겠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나? 아니면 하도 귀신을 많이 해치우다 보니 저주라도 걸린 건가? 그렇다고 쫓아내자니 내가 했던 말이 있어서 그걸 무르지도 못하겠다.

 분명 그냥 쫓아내도 뭐라고 할 사람은 없을 텐데, 이상하게 마음에 걸리는 것들이 있다. 하나는 책상 위에 있는 저 책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냥 문양 같아 보이는 저걸 난 읽을 수 있다. 거기다 쓰여 있는 내용은 쉽사리 믿을 수 없는 것들뿐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를 쫓아내서는 안 된다는 내 마음이다. 나도 이해할 수 없는 이 술렁거림은 대체 뭘까?

 그런 생각을 하며 눈을 감고 있었더니 휴대전화에서 알람이 울린다. 얼른 일어나서 확인해 보니 그 녀석이 다시 보낸 문자다. 급하게 눌러 열어서 읽는다.

 '아는 애한테 물어보니까 이거 신이 쓰는 문자라고 하는데? 사진 보내준 사람한테 그렇게 말해주래. 네가 이상해할 거 알긴 하는데, 확실한 녀석한테 물어본 거니까 의심은 하지 말고.'

 이 자식은 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신이 쓰는 문자? 그냥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알아들으란 말이야. 나는 신경질적으로 화면을 누르며 답장을 보낸다.

 '아니, 그렇게만 말하면 누가 알아듣냐. 평소에 나한테 무식하다고 하더니 지가 더 무식하네. 증거라도 보내주던가.'

 이렇게 보내놓고 휴대전화를 던지듯이 침대에 내려놓는다. 답장만 기다리려니 지겹긴 하지만, 아무래도 이게 열쇠가 될 거 같아 얌전히 있기로 했다. 한 10분 정도 기다리니 답변이 왔다. 생각보다 빠르네. 문자를 보니까 사진을 같이 보냈다.

 '우연히 그 문자를 아는 녀석이 있어서, 그럼 증명 좀 하게 글이라도 써서 보내주라고 했더니 이렇게 써줬다. 너라면 읽을 수 있을 거라고 하더라. 난 알아보지도 못하겠는데…. 아무튼 쉬는 날에 이게 무슨 고생이냐? 나도 잠 좀 푹 자보자.'

 푸념이 담겨있지만, 지금은 이보다 고마울 수가 없다. 나는 사진을 바라보았다.

 '표식이 새겨진 영혼을 가진 자에게.

 당신이 누구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기록자를 만난 모양이군요. 그가 이상하게 보여서 지금 당장은 믿기 힘들겠지만, 천천히 받아들여 주셨으면 합니다. 어머니인 □□을 대신하여 부탁드립니다. 그와 잘 지내주시길 바라요.

 가브리엘.'

 그 사진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아무래도 진짜 그 문자를 아는 모양이다.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체계적으로 문장이 되게 썼을 리가 없다. 일단 중요한 정보를 얻은 것 같아 그 녀석에게 감사 문자를 보내고 다시 생각해본다. 이 사진이랑 책의 내용을 가지고 추리를 해봐야 한다.

 사진에 나와 있는 편지는 분명 나한테 보내는 것이다. 그런데 나를 가리키는 호칭을 '표식이 새겨진 영혼'이라고 그가 말한 것과 똑같은 맥락으로 썼다. 그리고 그 남자를 기록자라고 적은 것이 책에 쓰인 것과 같다. 거기다 어머니라고 칭하는 □□, 읽을 수는 없지만 분명 책에 있는 것과 똑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그렇다는 건 이 편지를 쓴 가브리엘이라고 자신을 밝힌 사람은 책에 쓰여있는 어머니라는 존재를 안다는 소리고 또한 지금 방 밖에 있는 저 남자도 안다는 소리다.

 이 편지를 쓴 사람이랑 만나보면 직방일 텐데 거리가 좀 있어서 그건 지금 무리일 것 같고, 내가 추리할 수 있는 건 이 정도다. 믿고 싶지는 않지만 이렇게 글까지 받았는데 안 믿는 것도 좀 그렇고…. 대체 나한테 무슨 시련을 내리는 건지 모르겠다.

 아무튼 내가 집주인인데 이렇게 방에 갇혀 있을 수는 없다. 빨리 어떻게든 해결을 하지 않으면…. 일단 휴대전화를 들고 방 밖으로 나간다. 그는 소파에 앉아있다. 주변을 둘러보니 어제 장을 봐온 것은 정리를 다 해둔 모양이다. 그를 다시 바라보니 미소를 짓고 있다. 내가 안에서 무슨 골머리를 싸맸는지 알지도 못하고 저렇게 웃기만 하는 걸 보자니 열 받는다. 나는 휴대전화의 화면을 켜 아까 받은 편지를 그에게 들이민다.

 "이거, 무슨 글인지 알겠어요?"

 그는 화면을 뚫어 저라 쳐다보더니 흠칫한다. 대체 뭘 보고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거지? 그는 굳은 얼굴로 말한다.

 "가브리엘 님의 편지…. 이걸 어떻게 구한 거지?"

 가브리엘 님? 편지를 쓴 사람이 누군지 아는 모양인데, 아무래도 편지를 쓴 사람은 이 남자보다 높은 사람인가 보다. 나는 일단 기를 잡으려고 강하게 말한다.

 "내가 먼저 질문했잖아요."

 "…. 그래, 당연히 알지. 너에게 보낸 편지잖아."

 두 사람이나 같은 글자를 쓴다면 그건 그들이 실제로 쓰는 문자라고 생각해도 되겠지? 거기다 나에게 보낸 편지란 걸 단박에 알아본다. 이건 의외로 큰 수확인지도 모른다.

 "가브리엘이란 건 누구죠?"

 그의 표정이 다시 변한다. 아무래도 난감한 질문을 한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이 의문을 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다시 물어볼게요. 가브리엘은 누구예요?"

 "그는 지식의 신이다. 아무래도 인간계에 내려와 계신 모양이군."

 갑자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 지식의 신이라고? 그것도 의문이지만 신이 인간이랑 알고 지낸다고? 그걸 믿으라는 게 제정신으로 이야기하는 건지 의심이 간다. 이젠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큰 소리를 낸다.

 "이 편지를 어떻게 받았는지 알고 이야기하는 거야? 이건 내가 아는 사람한테 부탁해서 받은 거야. 그런데 신이 인간이랑 알고 지낸다고?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야?"

 "가끔 이렇게 내려와서 인간과 같이 살기도 하니까…. 믿기 힘들어도 사실이야. 그래도 가브리엘 님이 인간계에 내려와 계신 경우는 보기 힘들지만."

 진짜 이 정도로 미친 걸 보는 건 처음이다. 하지만 아무리 화가 나도 무작정 거짓말이라고 하기는 힘든 게, 그의 말에 입을 맞춰주는 인간이 최소한 한 명은 있다는 것이다. 거기다 그런 인간을 한 다리 건너서 만난다는 게 가능한 확률이 얼마나 될까? 계산은 안 되지만 아무튼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이 든다. 나는 일단 진정하기로 했다. 이래서야 진행이 안 된다. 한숨을 쉬고 다시 궁금한 걸 물어본다.

 "지식의 신이란 건 무슨 소리예요? 그럼 뭐, 신이 여러 명이라기도 한다는 거예요?"

 "지식의 신은 말 그대로 이 세계의 모든 지식을 가지신 분이야. 그리고 신은 세 분, 힘의 신과 지배의 신, 그리고 지식의 신이 계시지."

 "힘과 지배, 지식? 그럼 당신의 어머니는 뭐죠?"

 "어머니는 태초부터 존재하셨고 모든 것을 가지셨던 혼돈이다."

 다시 느끼는 거지만 정말 체계적이다. 내가 할 말을 잃고 있자 그는 설명을 이어간다.

 "태초에 혼돈이 있었는데, 그분께서 자신의 힘과 지식, 그걸 다스리는 힘을 나눠 신들에게 깃들게 하셨지. 그렇게 태어난  게 힘의 신인 제루엘, 지배의 신인 미카엘, 지식의 신인 가브리엘이다."

 "책에는 당신 어머니의 이름이 문양으로만 쓰여 있던데 그건 뭐죠?"

 "신의 이름은 원래 인간이 인식할 수 없기 때문이지. 거기에 쓰여 있는 건 어머니의 진짜 이름이고 내가 이야기한 혼돈이라는 건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이름으로 번역한 거야."

 이걸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그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한 뒤, 이 세계에 대한 것과 신에 대한 것을 설명해 달라고 그 녀석에게 문자를 보낸다. 아무래도 편지를 쓴 그 사람에게도 확인을 해봐야겠다.

 "난 당신을 믿을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확인을 할 필요가 있으니, 이 정도는 괜찮죠?"

 "상관없어. 가브리엘 님께서도 같은 이야기를 해주실 테니까."

 우리는 답장이 올 때까지 앉아서 기다리기로 했다.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한 가운데, 나는 다른 곳을 보고 있다. 그가 나를 빤히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이 상황 자체가 참 이상하다. 열심히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나를 설득하려는 그와 그걸 증명하려고 하는 나. 대체 누가 더 이상한 건지 모를 정도다. 아까 전 같이 10분 정도 지나니까 알람이 울린다. 드디어 답장이 왔다.

 '물어보니까 이걸 써주더라. 근데 다음부터는 이 번호로 직접 연락해라. 난 귀찮아서 이만 빠지련다.'

 문자 안에는 전화번호와 사진이 들어와 있다. 이러고 싶진 않았는데 신세를 졌다. 나는 얼른 답장을 보내고 사진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사진에는 문양으로 보이는 신의 글자라는 게 아까보다 길게 쓰여 있었다.

 '표식을 가진 영혼을 지닌 자에게.

 아무래도 그의 말을 믿기 어려우셔서 저에게 확인을 받으려고 하시는군요. 괜찮습니다. 가르쳐 드리지요.

 이 세계에는 맨 처음 혼돈이 태어났습니다. 혼돈은 세계에 혼자 있다는 것을 깨닫고 외로워서 힘의 신 제루엘과 지배의 신 미카엘, 지식의 신 가브리엘을 만들어 혼돈이 가지고 있던 것을 넣어주었습니다. 혼돈은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자신이 있을 공간을 만들어 자리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외롭지 않아 행복했습니다.

 만들어진 세 신은 다른 세계를 보고 자신들의 차원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을 제1차원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혼돈은 자신의 아이들이 만든 차원을 보고 그 차원의 모든 것을 기록해두고 싶다는 욕구를 가졌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인간의 모습을 가진 기록자를 만들어 제1차원의 인간계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가 혼자서 외로워하리라 생각해 신의 글자를 읽을 수 있는 영혼을 만들어 인간계로 보냈습니다.

 당신이 보신, 책의 첫 장에 쓰여 있는 글은 기록자인 아인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저를 믿으실지 말지는 당신의 선택입니다만, 저는 사실만을 적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그를 미워하진 마시고 가엽게 여겨주셨으면 합니다. 당신 같은 인간이 없다면 그는 혼자이니까요.

 가브리엘.'

 제법 긴 편지에 이 남자가 이야기했던 것이 거의 그대로 적혀있다. 거기다 나는 그의 이름을 이야기하지도 않았는데 이름을 적어놓았다. 나는 이 편지를 그에게 보여주며 재차 확인을 요구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한다.

 "맞는 이야기야. 나도 어머니에게 들었던 이야기니까."

 어이가 없다. 둘이서 짰다고 하기에도 말이 안 되는 게, 둘이 언제 어떻게 만나 이야기를 한다고 이걸 정한단 말인가? 거기다 나 하나 속이자고 이렇게 짠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이제는 믿을 수밖에 없나 보다. 나는 길게 한숨을 쉰다.

 "대체 이걸 믿으라고 만든 건지 모르겠네요."

 "천천히 받아들이면 된다. …. 사실은 믿지 않아도 좋아. 그래도 나는 계속 네 곁에 있을 테니까."

 "그거, 스토킹하겠다는 범죄예고로 들리는데요."

 아무렇지도 않게 무슨 위험한 말을 하는 건지. 그런데 그의 말을 들으니 갑자기 생각나는 게 있다.

 "계속 내 곁에 있겠다니, 나 이전에도 이랬어요?"

 "이전에는 평생 믿지 않은 적도 있었지. 그때도 조용히 따라다녔다."

 "당신 집념이 무섭네요."

 "나를 이해 해줄 수 있는 인간이 세상에 딱 하나만 존재한다. 그러면 넌 그 사람을 포기할 수 있나?"

 그 질문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솔직히 나라도 그런 상황이라면 포기를 못 할 거 같다. 내가 아무 말도 없이 일어서서 서성거리자, 그는 나에게 말을 건다.

 "시간이 벌써 저렇게 됐네. 배고프지 않아?"

 시계를 바라보니 벌써 12시가 한참 지났다. 그제야 배가 고프다는 걸 깨달았다. 다른 데에 계속 신경을 쓰다 보니 잊어버린 모양이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부엌으로 향한다. 아무래도 어제같이 또 밥을 차릴 모양인가보다.

 "그러니까…. 안 해도 된다니까요."

 "이 정도는 하게 해줘. 솔직히 나보다 어린 애가 집안일을 하게 놔두는 것도 좀 그래서…."

 저 사람, 의외로 그런 걸 신경 쓰는구나. 그 말에 이번에는 그냥 잠자코 있기로 했다. 몇 년 만에 집에 사람과 같이 있는지 모르겠다. 좀 이상한 사람이라는 점만 제외하면 좋겠지만 어쩔 수 없지. 솔직히 말하자면 이상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길에서 모르는 사람을 데려온 시점에서 이상하지만, 이제는 뇌가 마비된 건지 아무래도 좋았다. 

 "그러고 보니 몇 살이라고 했죠?"

 "그냥 25살이라고 생각해."

 그가 뭘 하는지 돌아보니 어제 해놓았던 것을 데우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어제저녁에 밥을 했었던 모양이다. 이쯤 되면 그가 무슨 식모인 것 같다. 잠시 기다리자니 그가 나를 부른다. 나는 식탁에 앉아 그가 차려준 밥을 먹는다. 남이 차려준 밥이 맛있는 건지 그가 한 요리가 맛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밥을 먹다 보니 깨달았다. 어제 낮과 같이 또 그의 몫을 차려놓지 않았다.

 "어제도 밥 안 먹지 않았어요? 같이 먹어요."

 "난 안 먹어도 죽지 않아. 그러니 괜찮아."

 "안 먹으면 죽지, 왜 안 죽어요? 어서 먹어요."

 그러자 그는 사족을 붙이지 않고 자신의 몫을 차려온다. 말싸움하는 것보다 그냥 먹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한 모양이다. 천천히 씹다 보니 그새 밥을 다 먹었다. 설거지는 내가 하기로 하고 그는 쉬라고 했더니 식탁 앞에 앉아 의자를 돌려 나를 계속 쳐다본다. 참다가 한마디 한다.

 "왜 쳐다보는 거예요?"

 "이렇게 있는 게 그냥 좋아서."

 방심했는데 훅 치고 들어온다. 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모르겠다. 아니, 사실은 조금 알 거 같기도 한데 무시하는 거다. 그가 말한 게 전부 사실이라면 그는 70년 동안 혼자 외롭게 지낸 것이다. 갈 곳도 없고, 받아주는 이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자신을 이해할지도 모르는 사람을 만났다. 그러면 저렇게 되는 것도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자니 조금 안쓰럽게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도 동시에 아직 믿지 못하는 나도 있다. 설거지를 금방 끝내고 뒤돌아서며 그에게 물어본다.

 "내가 지금 쫓아내면 어떻게 할 거예요?"

 "그럼 전과 같이 밖에서 지내는 거지. 그래도 네가 있으니까 괜찮아."

 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 이야기한다. 뭐가 그를 저렇게까지 만든 것일까? 역시 어딘가 망가진 것 같다. 아무래도 어제 생각했던 것 같이 그를 그냥 내보낼 수는 없을 것 같다.

 "안 되겠네요. 역시 그냥 여기 있어요."

 "…. 정말로 괜찮아? 아직 날 믿는 것도 아니잖아."

 "휴, 어쩔 수 없잖아요. 뒤에서 스토킹을 당하느니 그냥 앞에 보이는 게 낫지."

 나는 한숨을 푹 내쉰다. 이젠 정말 돌릴 수 없게 됐다. 이렇게 됐으면 같이 지내기 위한 규칙부터 만들어야겠다.

 "진짜….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 아무튼 이제부터 잘 부탁해요."

 "나야말로 잘 부탁해."

 그는 웃으며 나에게 손을 내민다. 나는 그의 손을 마주 잡고 악수를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동거의 시작인 것 같다.

 …….

 진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이번의 그는 꽤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는 내 말을 믿지 않아서 집에서 쫓겨났다. 그 이후에도 계속 쫓아다녔지만, 결국은 칼부림까지 났었는데…. 그때를 생각하니 절로 미소가 나온다. 남들에게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괴로울지도 모르지만, 그것마저 나에겐 추억이다. 역시 외로운 게 너무 지속하여도 좋을 게 없다. 그도 그럴 게 나도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로 웃음이 나오지 않는가? 아무래도 이상하게 보이겠지.

 어쨌든 이렇게 그와 가까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저 기쁘다. 어찌 되었든 나를 받아들여 줬다는 것이 기쁘다. 아직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고 나를 믿지 않는 것 같지만 그래도 곁에 있게 해준 게 어디인가? 오늘은 안심하며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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