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다음날 by rwine

 잠이 깨어 침대 위에서 이리저리 뒤척거린다. 햇빛이 창문을 비추니 눈을 감고 있는데도 부신 느낌이다. 눈을 뜨니 하얀 벽지가 보인다. 지금이 몇 시지?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나 책상으로 걸어간다. 책상 위에 얹은 휴대전화를 바라보았다. 화면을 켜니 벌써 10시 20분 정도다. 쉬는 날이라고 너무 늘어지게 잔 모양이다. 잠을 자느라 굳은 것 같은 몸을 펴기 위해 기지개를 켠다. 그러고 보니 어제 데려온 남자가 갑자기 생각났다. 나는 급하게 방 밖으로 나선다. 그는 소파에 앉아 가만히 있었다.

 "잘 잤어?"

 그는 나를 보더니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어제의 감정 없이 굳어있던 얼굴과는 천지 차이다. 저렇게 웃으니 사람 좋아 보인다. 옷은 어제 줬던 흰 티셔츠에 회색 운동복 그대로라 그의 외모와 묘하게 안 어울려 이상해 보인다. 그런데 거실을 잠시 둘러보니 유달리 깨끗하다. 그가 청소라도 한 건지 생각할 정도다. 잠귀가 어두운 편은 아니라 소리가 났으면 깼을 텐데….

 "혹시 청소라도 한 거예요?"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린다. 내가 너무 깊이 잠들었나? 모르는 사람이 집 안에 있는데, 이렇게 안심하고 잠들다니 나답지 않다. 평소에는 항상 긴장하고 지냈는데 이렇게 푹 자다니…. 내가 이렇게 무신경한 사람이었는지 의심이 갈 정도다. 그는 나를 빤히 바라본다. 어쩐지 우리 집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어색하다. 일단 말을 꺼내 보자.

 "어…. 그러니까 아인 씨?"

 "씨는 필요 없어. 그냥 편하게 불러."

 "네. 그런데…."

 막상 말을 꺼내려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한다. 그러고 보니 어제 갈 데가 없다고 이야기했던 거 같은데, 집에서 나가라고 하기에도 껄끄럽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런 경험이 있었던 적이…. 있을 리가 없지. 세상에 어떤 사람이 길거리에서 처음 보는 사람을 집에 데리고 오냐고. 어제의 나는 대체 무슨 생각이었던 건지 모르겠다. 그러고 자책하는 나에게 그가 먼저 말을 걸었다.

 "덕분에 어제는 오랜만에 잘 잤어. 고마워."

 "그건 다행이네요. 그런데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내 말에 그는 고민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낼 곳이 없으면 그럴 수밖에 없다. 한참을 잠자코 있던 그는 이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어제도 말했지만, 갈 데가 없어서…."

 난감한 상황인 모양이다. 당연히 그렇겠지. 나라도 집도 절도 없이 떠돌아다닌다면 그럴 것이다. 아무래도 내가 결단을 내려야 될 상황인 것 같다. 나도 고민을 하느라 우리의 사이엔 정적이 흘렀다. 그도 나도 서로를 바라보며 아무 말이 없다. 그러다 나는 아주 큰 결심을 했다.

 "지낼 곳이 없으면, 우리 집에 있어요."

 그의 얼굴이 변한다. 깜짝 놀란 모양이다. 하지만 이대로 쫓아내는 것도 불쌍하고, 어제 보니 상태도 안 좋아 보이는데 그런 사람을 밖에 내보냈다가 큰일이 생겨 내가 얽히는 것도 싫다. 

 "갈 데가 생길 때까지 그냥 여기 있어요."

 "하지만 그런 친절은…."

 "하지만이고 뭐고 그다지 내가 친절해서 이러는 거 아니에요. 아인, 당신은 밖에 나가면 큰일 날 것 같다고요."

 이 말에 그가 당황한 게 보인다. 내가 너무 강하게 말했나? 하지만 정말 이대로 내보내면 어디 가서 또 이런 말을 하다가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드는걸. 그만큼 어제 그 말들은 황당했으니까. 역시 그 문자에 대한 건 설명할 수 없지만 말이다.

 "….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신세 좀 질게."

 "아…. 청소해 준 거, 고마워요."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다시 내 방으로 들어와 책상 앞에 앉았다. 머리를 짚고 생각에 빠진다. 도대체 내가 무슨 말을 한 거야. 우리 집에 머물러? 저렇게 이상한, 거기다 모르는 사람을…? 머릿속이 복잡하다. 그런데 처음 봤을 때도 느꼈던 거지만 왠지 내버려 둘 수가 없다. 대체 왜…?

 이런 때에 조언해 줄 어른이라도 있으면 분명 내쫓으라고 하겠지? 하지만 나에게 그래 줄 어른이 없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하다못해 남들에게는 그 흔한 친척 한 명도 없다. 나는 고아에다 지금 17살이다. 이런 상황이 당황스러운 게 당연하다. 머리를 헝클어본다. 그래도 이 상황이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돌아버릴 거 같다. 의자에서 일어나 침대에 몸을 던진다. 

 나는 눈을 감았다. 다시 천천히 정리해보자. 나는 지금 혼자 살고 있고, 그러다 모르는 사람을 집에 들여 같이 살자고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은 아무래도 정신이 좀 이상한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왠지 그를 버리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런데 어째서인지는 모른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영문을 모르겠다.

 한참을 그러고 있으려니 배에서 소리가 난다. 고민이 많아도 배는 고프구나. 처음 알았다. 이제까지는 그냥 아무 걱정 없이 귀신을 물리치고 지내기만 하면 됐으니 당연한 일인가? 내가 너무 몸만 쓰고 머리는 쓴 것 같지 않아 왠지 자괴감까지 든다. 이러니 그 녀석한테 단순, 무식하다고 까이는 거구나. 그걸 지금 깨닫다니….

 하지만 이런다고 배고픔이 없어지진 않는다. 결국 그와 다시 마주쳐야 하는구나. 나는 다시 방문을 연다. 그러자 갓 지은 밥 냄새가 풍겨온다. 아니, 이건 또 무슨 상황이지? 고개를 돌려 살펴보니 식탁 위에 밥과 반찬이 있다. 반찬은 그냥 어제 사 왔던 간편식 중 하나를 데운 것 같은데, 그 사이에 밥까지 한 거야? 내가 방에서 나온 것을 눈치챈 건지 그가 고개를 돌린다.

 "안 그래도 부르러 가려고 했는데, 잘 나왔어."

 "…. 어느새 밥까지 한 거예요?"

 "방에 들어간 지 한 시간은 지났는걸. 어서 와서 밥 먹어."

 시계를 보니 12시에 가깝다. 내가 그렇게 오랫동안 방에 틀어박혀 있었나? 기껏 차려놓은 밥을 외면하는 건 아까운지라 식탁 앞에 앉자 그도 나를 마주 보고 앉는다. 식탁 위를 다시 보니 내 몫의 밥은 있는데 그의 몫은 없다.

 "어, 당신은 밥 안 먹어도 돼요?"

 "난 안 먹어도 괜찮아."

 "그래도…."

 "괜찮으니까 어서 먹어."

 그는 나를 빤히 바라본다. 이러면 먹는 게 껄끄러운데…. 일단 차려준 정성이 있으니 밥을 입에 댄다. 혹시 이상한 게 섞이지 않았을까 봐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평범한 밥이다. 오히려 잘 지어진 밥이다. 내가 그를 너무 이상하게만 생각하는 것일까?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게 어제 했던 대화가 너무 이상했는걸. 아무 말 없이 밥만 꾸역꾸역 먹고 있자니 그가 미소를 짓는다. 순간 심장이 덜컹하는 느낌이 난다. 너무 잘생긴 것도 마주 보기엔 해롭구나. 덕분에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먹는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람. 그렇게 먹고 있자니 그가 혼자 말하기 시작한다.

 "아무리 혼자 산다고 해도 간편식만 먹는 건 좋지 않아. 아무래도 장을 보러 가는 게 낫겠네."

 혼자 산다는 건 살펴보면 금방 알 것이니 그렇다 치고 장을 보러 간다니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순간 밥 먹던 걸 멈추고 물어본다.

 "장이요?"

 "응. 집에 식자재가 아무것도 없잖아. 같이 지내게 됐으니 밥 정도는 해줄게."

 "…. 너무 갑작스럽네요. 같이 산다고 이 정도까지 할 필요는 없어요."

 정말 당황스럽다. 이러면 내가 마치 집안일을 해줄 사람을 들인 것 같지 않나? 그런 걸 바라진 않았다. 그냥 여기 있어도 된다는 허락만 했는데 이렇게 하는 건 내가 바란 게 아니다. 내가 거절을 하자 그는 이 정도는 별로 상관없다는 듯이 이야기한다.

 "그냥 내가 해주고 싶어서 하는 거야. 사양은 안 해도 돼."

 "아니, 그러면 마치 내가 집안일 해달라고 한 거 같잖아요."

 "지내게 해주었는데 이 정도는 시켜도 돼."

 어째 말이 계속 돌아서 원점으로 가는 것 같아 입을 다물고 다시 밥을 먹는다. 얼마 안 남은 밥을 다 먹고는 그에게 설거지는 내가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빨래 건조대로 향한다. 자신의 옷을 찾는 모양인데, 아까 그 말은 빈말이 아니었나 보다. 그런데 그에게 돈이 있어 보이진 않던데….

 "정말로 장을 보러 갈 생각이에요?"

 "응."

 "하지만 돈 없지 않아요?"

 "…. 미안한데 좀 주지 않을래?"

 오늘은 아무래도 당황만 하다가 끝날 거 같다. 이건 좀 당당해 보일 정도인데…. 안 주면 뭔가 귀찮아질 거 같아서 그에게 만 원짜리 5장을 쥐여준다.

 "자, 여기요."

 "옷도 그럭저럭 말랐고…. 다녀올게."

 누가 보면 아주 오랫동안 같이 지낸 사이인 줄 알 거 같다. 실제로는 어제 처음 본 사이인데 말이지. 그가 집을 나서는 소리가 들리자 나는 설거지를 하기 시작한다. 대체 이건 또 무슨 상황인지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 아니, 장을 보러 간다고 했는데 위치는 아는 거야? 거기다 어제 처음 온 집에 다시 찾아오는 게 가능할까? 그가 나가고 나서야 그 생각이 난다. 엄청 당연하게 말을 해서 자연스럽게 돈을 건네줬다. 이젠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설거지를 금방 끝내고 얼굴만 씻은 뒤, 그를 찾으러 나서자. 그렇게 생각했으면 빨리 움직여야지. 얼굴을 씻고 시계를 보니 벌써 1시가 다 되어간다. 그가 나간 지 대충 10분 정도 지났다. 대체 어디 갔을까? 문밖을 나서니 그가 다시 들어오는 게 보인다. 그는 손에 큰 비닐봉지를 들고 있다. 나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봉지를 받아들고 안을 살핀다. 그 안에는 평범하게 식자재가 담겨있다. 양파에 당근, 햄 등등…. 집으로 들어오면서 그에게 말을 건다.

 "집은 어떻게 찾아온 거예요? 장은 또 어떻게 봐온 거예요?"

 "이 정도는 쉽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대체 어떻게 장을 봐서 집에 돌아온 거지? 아니, 이렇게 생각하니, 마치 안 들어오기를 바란 것 같잖아. 그냥 순수하게 의문이 들 뿐이다.

 "아니, 쉬운 게 아니잖아요."

 "나한테는 쉬워. 기억하는 건 금방 하니까. 그리고 너에 대한 건 대충 알고 있어."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한다. 나에 대한 걸 알고 있다고? 이 남자는 진짜 의문투성이다. 나는 그의 어깨를 잡는다.

 "나에 대한 것? 도대체 뭘 알고 있는 거야, 당신?"

 "…. 네 나이, 네가 왜 가족 없이 혼자 사는지…. 뭐 그런 것."

 그가 조금 찡그리는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나에겐 그것보다 내가 말해주지도 않은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이 더 들어간다. 그가 아파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럼 왜 얼굴을 찡그리는 거지?

 "말해주지도 않은 걸 어떻게 아는 거지?"

 "어젯밤에 봤으니까. 의도한 건 아니지만…."

 "뭐, 뭘 봤다는 거야?"

 "어릴 때 너의 부모님이 죽은 것, 얼마간은 돌봐주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것도 몇 년뿐이고 그 이후는 너 혼자 살아야 했던 것, 중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귀신들을 잡아가며 고생해서 이 집을 사들인 것."

  그가 말한 건 정확히 내 과거가 맞다. 하지만 나는 말해준 적이 없다. 그도 그럴 게 어제는 말없이 집안일만 하고 바로 잤는걸. 그가 말한 데로 정말로 과거를 본  건가?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나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선다.

 "당신, 대체 정체가 뭐야?"

 "어제 말해줬잖아. 나는 제1차원의 기록자. 과거를 본 건 그다지 내 의지가 아니지만 말이야."

 이젠 혼란스러워서 머리가 못 따라가는 거 같다. 내가 뒤로 물러서며 어깨를 잡은 손을 놓자, 그가 나에게 가까이 다가온다. 그러더니 나를 조금 강하게 끌어안는다. 나는 이제까지 어디다 놓을 타이밍을 놓치고 계속 들고 있던 봉지를 떨어트린다. 이건 대체 무슨 의미지?

 "무슨…."

 "지금까지 고생했어. 살아있어 줘서 고마워."

 그 말을 듣자 갑자기 멍해진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그는 말의 의미를 알 수 없어 가만히 있는 나를 끌어안고는 고개를 내 어깨에 파묻는다.

 "70년을 찾아 헤맸어. 겨우 찾았으니까…. 놓지 않을 거야."

 그렇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어쩐지 울먹거리는 거 같다. 괜히 움직여서 자극하는 것은 좋지 않을 거 같아 그에게 안겨 가만히 있다. 머리는 이 상황을 어떻게 벗어날지 생각하는 것으로 꽉 차 있다. 어제부터 말도 안 되는 상황의 연속이다. 하지만 이렇게 안겨 있기만 하면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는다. 나는 그의 어깨를 강하게 밀쳐낸다. 그가 밀려나며 표정이 변한다. 적잖이 당황한 모양이다. 나는 일단 궁금한 것부터 물어보기로 했다.

 "70년? 겨우 찾아?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의미를 모르겠는데…."

 "아무래도 아직 내 말을 못 믿는 모양인데, 내가 어제 이야기했잖아. 너는 표식이 새겨진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그러고 보니 그런 이야기를 했던가? 대충 들어서 기억이 잘 안 난다. 그런 생각이 표정에 드러났는지 그가 한숨을 쉰다.

 "분명히 이야기했어. 너에게는 나만 알 수 있는 표식이 있다고. 그 표식을 지닌 영혼이 인간계에서 사라진 지 70년이 지났어. 난 그동안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기록을 내 책에 남기며 지냈지. 그러다 널 만난 거야."

 "아니, 그러니까 그걸 증명할 증거가 어디에 있다는 거예요?"

 "내 책이 증거야. 그걸 네가 읽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증거지."

 이야기가 계속 맴돈다. 도대체 믿을 수가 있어야지. 하지만 그가 최소한 기억을 읽는 능력 정도는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할 거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가 내 과거를 어떻게 알겠는가? 하지만 다른 이야기는 아직 믿을 수가 없다. 증명할 필요가 있다.

 "잠시 그 책 좀 줘봐요."

 그는 알겠다며 품에서 책을 꺼낸다. 그러고 보니 그 긴 코트를 또 입고 나간 거야? 거기다 저 무거운 책은 대체 어떻게 저기서 튀어나오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그 책을 받아들고 내 방으로 황급히 들어가 문을 잠근다. 다행히 그가 뒤따라오지는 않는다. 나는 책상에 그 책을 올려놓고 맨 첫 장을 폈다. 거기에는 어제 봤던 글귀가 그대로 있다. 나는 휴대전화로 그 첫 장을 찍었다. 다행히 사진에 그 글자는 그대로 찍힌다. 이제 이걸 어떻게 한다? 그래, 이걸 협회에 보내서 이 글자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는지 알아보는 게 좋을 거 같다. 나는 휴대전화 속 전화번호부를 황급히 뒤져서 회장님의 전화번호를 찾았다. 그리고 문자로 사진을 첨부해서 보낸다. 

 '회장님, 부탁이 있습니다. 이 글자에 대해 아는 사람이 있는지 좀 알아봐 주셨으면 합니다. 굉장히 급한 일입니다.'

 일단 이렇게 보내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도움을 청할 사람이 별로 생각나지 않는다. 혹시나 해서 사진을 아는 지인에게도 보내놓는다. 만나기만 하면 싸우기는 하지만 그래도 동갑이니 이 정도 부탁은 들어주지 않을까 싶다.

 문자를 다 보내고 침대로 가서 눕는다. 오늘 대체 몇 번째 눕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머리가 너무 복잡하다. 이럴 때는 차라리 자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눈을 감고 마음을 정돈해본다. 하지만 어느샌가 나는 슬쩍 잠이 든다. 왠지 잠결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은 것 같긴 한데….

 …….

아무래도 진에게 너무 큰 충격을 준 것 같다. 그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틀어박혔다. 문을 두드려 봤지만, 대답이 없다. 너무 급하게 다가간 걸까? 하지만 이런 방법 말고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쓸만한 말이나 행동이 떠오르지 않는다. 언제나 그랬다지만 시작할 때마다 조금 힘들다. 나를 알아보지 못하다니…. 그나마 나를 내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지만 이럴 때는 아무리 나라도 슬프다. 이전 생을 조금이라도 기억한다면 좋을 텐데.

 "하지만 놓을 순 없어. 얼마 만에 만났는데…."

 그릇을 씻으며 무심코 중얼거린다. 그래, 얼마 만에 만난 건데 이대로 헤어질 수는 없다. 그가 마음을 열도록 내가 더 노력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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