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어느 여름날, 집에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간편한 옷을 입고 장을 보러 갔다. 이럴 때는 혼자 사는 게 참 불편한 게, 쉬고 싶은데 쉴 수가 없다. 일이 끝나고 집에 들어오면 치울 게 눈에 보이고 먹을 것도 내가 직접 해 먹어야 한다. 귀찮은 빨래도 해야 하고, 생필품도 채워놓아야 하고, 쓰레기는 혼자서 사는데도 또 얼마나 나오는지 모른다. 그래도 가끔 좋을 때는 있다. 늦게 들어오더라도 핀잔을 주는 사람이 없다는 정도이다. 하지만 역시 혼자인 건 쓸쓸한 법이다. 조용한 밤에 침대 위에 누워있을 때면 사람의 온기가 그립곤 하다. 차마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마트에 도착해서 물건을 하나씩 골라 바구니에 담는다. 며칠은 쉴 것 같으니 조금 넉넉하게 사야 할 것 같다. 요즘은 간편식도 좋게 나와서 혼자 사는 사람에게 참 좋다. 먹을 것만 골라 담았는데도 금세 바구니가 가득 찼다. 조금 많이 사는 것일까 싶지만 아무렴 어때. 돈도 충분히 있는데 이 정도 쓰는 건 괜찮다. 계산대에 바구니를 올리니 직원이 물건을 들고 바코드를 하나씩 찍는다. 아무 생각 없이 그걸 보고 있으려니 어느새 종업원이 계산을 끝냈다. 거스름돈과 물건을 챙겨 마트를 나선다.
다시 우산을 펴고 길을 천천히 걸어가다 건물 사이의 골목길에 인기척이 있는 것 같아 고개를 돌려보니, 사람 형체를 가진 무언가가 보인다. 걸음을 멈추고 자세히 보니 남자가 비를 맞으며 주저앉아 있다. 계절에 맞지 않는 길고 흰 코트를 입고 있는 남자다. 무슨 일이 있어서 그런 걸까? 이상하긴 하지만, 왠지 두고 보자니 위험한 거 같아 가까이 다가간다.
"무슨 일 있어요?"
천천히 다가가니 그의 얼굴이 제대로 보인다. 희고 깨끗한 피부에 길지 않고 적당히 단정하게 정돈된, 푸른색이 섞여 있는 검은 머리카락, 눈은 보이지 않지만, 오뚝이 솟은 코, 촉촉하고 붉은 입술, 날카로운 턱선을 가진 굉장한 미인이었다. 그는 나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본다. 그의 파란빛이 도는 검은 보석 같은 눈을 바라본 나는 순간 멈칫하고 말았다. 그는 아무 말도 없이 나를 바라본다.
"저기, 괜찮아요?"
나는 다시 한번 말을 걸어 본다. 그러자 그는 갑자기 일어나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마치 나를 샅샅이 살피는 것 같은 느낌에 조금 소름이 돋았다. 웬만해서는 꿈쩍도 하지 않는데,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이 얼음장 같아 순간적으로 긴장해 한 발짝 뒷걸음질을 친다. 그는 뒤로 물러선 나의 손목을 쥐었다. 그러곤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찾았다."
그러더니 휘청거린다. 나는 바로 그의 어깨를 잡고 받쳤다. 내 키가 174m 정도인데 나보다 훨씬 컸다. 아마 185m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잠시 휘청거린 그는 몸을 가다듬었지만, 다시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놀라서 말을 건다.
"혹시 어디 아픈 데 있어요?"
그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행색은 깨끗한데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다. 다행히 몸이 아픈 건 아닌 모양이지만, 난 일단 그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기로 했다.
"우리 집이 근처니까 거기로 가요."
그러자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리는 그의 오른쪽 어깨를 받쳐 올려 우산을 그의 쪽으로 씌워주고 집으로 향한다. 우리 집까지는 여기서 5분 정도 걸린다. 가는 동안 그는 휘청거리긴 했지만 숨을 몰아쉰다던가 아픈 내색은 하지 않았다.
우리는 금세 집에 도착했다. 나보다 덩치는 컸지만 조금 마르고 해서 그런가 생각보다 별로 무겁지는 않아 손쉽게 옮겨 왔다. 그와 나는 비에 푹 젖어있어 일단 수건을 찾아 나의 머리를 닦으며 그에게 말한다.
"감기 걸리지 않게 일단 옷 벗고 씻고 와요. 할 수 있죠?"
다시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그는 내가 화장실을 가리키자 그곳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닫힌 문을 살짝 열고 젖은 옷을 내놓은 그는 다시 화장실로 들어갔다. 이윽고 물소리가 들리자 나는 바닥을 닦고 그의 옷을 빨기 위해 정돈해 세탁기 안에 넣고 돌린다. 코트는 빨 수 없어 옷걸이에 걸려고 했는데, 거기서 굉장히 두껍고 무거워 보이는 갈색 책이 '쿵'하고 큰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도대체 어디에 이만큼 큰 책이 들어있었던 거지? 일단 코트를 옷걸이에 걸어 건조대에 걸어 놓고 테이블 위에 책을 옮긴다.
책은 그 크기만큼 제법 무겁다. 겉은 가죽으로 만들어진 것 같고 가장자리에 금박으로 무늬가 멋들어지게 둘러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제목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책에는 무슨 내용이 쓰여 있는 걸까? 나는 조심스럽게 책을 펴 첫 장을 보았다. 그러자 본 적도 없는 문자가 책에 쓰여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내용을 읽을 수 있을 거 같았다. 나는 천천히 종이에 쓰인 글을 읽어보았다.
'나의 아이, 아인에게.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을 곳에 너를 보내는 것은 그곳의 역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써주었으면 해서란다. 너는 제1차원에 보내는 유일한 기록자이니 외롭겠지만 그래도 나는 너를 믿고 있단다. 너라면 열심히 해주겠지. 아인은 나의 자랑스러운 아이니까 말이야. 하지만 그런 너라도 홀로 외로움에 떨 것을 생각하면 나의 마음이 아프단다.
그런 너를 위해 너와 함께 해 줄 영혼을 하나 만들어 뒀단다. 너는 그 존재를 보면 금방 알아차릴 거란다. 나의 표식을 남겨놓을 테니 잘 보려무나. 그리고 그 영혼을 가진 존재는 이 글을 읽을 수 있을 거야.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다면 이 글을 보여주렴. 이런 글자는 차원 내에 존재하지 않을 테니 조금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거야.
너에게 큰 짐을 넘겨주는 것 같구나. 아마 나의 모든 것을 보고 싶다는 욕심이 너를 이런 상황에 부닥치게 만든 것이겠지. 정말 미안하구나. 그래도 나는 너를 많이 사랑한단다.
나의 아인에게 이 일이 좋은 경험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다양한 것을 보렴. 그리고 많은 것을 느끼고 끝이 오는 날에 다시 만나 모든 것을 이야기하자꾸나. 그날을 기다리며 이만 글을 줄이마.
너의 어머니, □□.'
마지막 단어만은 어떻게 해도 알아볼 수가 없지만,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보았다. 분명 읽기는 했는데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나는 책장을 넘겨 보았다. 황당하게도 거기에는 지구의 시작이 적혀있었다. 더 넘겨보니 생물이 어떻게 생겨난 건지 적혀있었고, 더욱 넘기니 공룡이 어떻게 멸종했는지 적혀있었다. 대체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책인지 모르겠다. 그때, 문을 똑똑 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리니 그가 화장실에서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나는 당황해서 말을 더듬는다.
"아, 오, 옷이 없구나. 잠시만 기다려요."
왠지 잘못한 것 같다. 방으로 향해 그가 입을만한 옷을 꺼내면서도 죄책감을 느꼈다. 보면 안 될 무언가를 본 느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큰 책이 있으면 무슨 내용이 적혀있는지 궁금해할 사람이 많잖아? 다른 사람이라도 이런 상황이면 책을 펴볼 것이다. 아무튼 그에게 조금 작을 것 같았지만, 내 옷을 챙겨 가져다주었다. 그는 금세 옷을 입고 나왔다. 역시 옷이 짧아서 그의 종아리나 팔뚝이 슬쩍 보인다. 아까 얼굴을 봤을 때도 느꼈지만 피부가 엄청 하얗다.
"내 옷이라서 짧은데, 조금만 참아요. …어, 뭐라고 불러야 되죠?"
"…아인."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름을 말한다. 얼굴에 맞게 목소리도 좋았지만, 그것보다 나는 그걸 듣고 짐짓 모른 체해야 했다. 책에서 봤던 그 이름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책을 안 덮지 않았던가? 눈을 굴려 바라보니 책은 펼쳐진 그대로다. 내가 눈을 돌리는 걸 눈치챘는지 그도 고개를 돌려 책을 바라본다. 허락도 없이 책을 본 게 들킨 것 같다. 그를 다시 바라보니 표정의 변화가 없다. 어색한 침묵 때문에 어쩌할 줄 모르고 우물쭈물하는 나에게 그는 말을 건다.
"…. 봤어?"
"…. 네."
실토하는 나는 마주 보던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 나는 그가 어떻게 반응할지 몰라 가만히 서 있다. 도대체 뭐라고 할까? 화를 낼 지도 모른다. 내가 처분을 기다리듯이 가만히 서있자니 그는 눈을 뜨고 다시 입을 연다.
"이야기가 좀 길어질지도 모르니 일단 앉는 게 어때?"
그러면서 그는 소파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도 쭈뼛대며 그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어쩌다 보니 마주 보게 앉았는데, 아까부터 계속 보던 얼굴이지만 새삼스레 잘생겼다는 생각이 든다. 자세히 보니 속눈썹도 제법 길다. 눈은 푸른색이 감돌고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저런 색이 나는 걸지 순간적으로 궁금해진다. 어쩐지 외국인같이도 생겼는데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사람같이도 생겼다.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자니 그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 일단 궁금한 것부터 물어볼래?"
그의 표정에는 감정이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의 말에는 어찌할지 모르는 난감함이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그 말대로 궁금한 것부터 물었다.
"…. 일단 저 책, 정체가 뭐예요? 그리고 왜 골목길에 그러고 있었어요?"
"저기, 하나씩 물어봐 줄래? 다 이야기해 줄 테니까."
그의 말에 급하게 질문한 것이 멋쩍어진 난 바로 입을 다문다. 그러자 그는 나의 질문에 천천히 대답해주기 시작한다.
"저 책은 네가 본 데로 이 차원에 관한 모든 것이 쓰여 있어. 맨 첫 장부터 봤으면 알겠지만, 나는 제1차원의 기록자야."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 제1차원은 뭐고 기록자는 또 무엇인지 의미를 모르겠다. 내가 아무 말도 못하고 가만히 있자 그는 다시 설명을 시작한다.
"처음부터 설명해야겠구나. 이 세계는 여러 개의 차원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우리가 있는 이곳을 제1차원이라고 불러. 그리고 나는 이 차원의 모든 것을 책에 기록하는 기록자라고 불리고 있어."
그렇게 이야기한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아무래도 내가 너무 벙해 있으니 기색을 살피는 것 같았다. 나는 필사적으로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기 위해 노력해본다. 아까 그 책에 쓰여 있던 글을 읽을 수 있었던 이유를 알아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문자는 보통의 사람이라면 절대 읽을 수 없으리라 생각할 정도로 본 적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걸 읽었다. 대체 이건 무슨 의미일까?
"아까 첫 장을 봤으면 알겠지만, 너는 표식이 새겨진 영혼을 가지고 있어. 그래서 이 책을 읽을 수 있지."
"표식? 내 몸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내가 몸을 손으로 가리키며 그렇게 말하자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나의 가슴 한가운데를 가리킨다.
"그게 아니라 영혼에 새겨진 거야. 그래서 지금 보는 것은 몇몇만 가능해."
"몇몇?"
"그래. 나나 인도자, 그러니까 영혼을 데려가는 자들 정도."
또 모르는 단어가 나왔지만 나는 잠자코 있기로 했다. 이런 식이면 오늘 밤 안에 이야기의 끝이 안날지도 모른다. 입을 다문 나를 앞에 두고 그는 다시 말을 잇는다.
"아무튼 넌 이 글자를 읽을 수 있는, 특별히 만들어진 영혼을 가지고 있어. 보통 인간의 영혼이랑 다르단 소리지."
"…. 그건 이제 이해가 됐는데, 어째서 그런 골목길에 주저앉아 있었던 거죠?"
"아, 그건…."
이제까지 큰 변화가 없었던 그의 얼굴에 조금 당황한 기색이 비친다. 그 변화에 왠지 그도 평범한 인간 같아 보여 무심코 안심해본다. 이제까지는 표정 변화도 없이 마주 보고 있어서 그가 감정이 없는 인형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도 감정이 있구나라고 순간 생각했다.
"…. 너를 발견하고 쫓아가다가 헛발을 디뎌 옥상에서 떨어졌어."
그런데 표정 변화도 없이 무슨 대단한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옥상에서 떨어지다니…. 아까 그 건물 높이가 아마 5층은 됐는데…? 그러고서 저렇게 멀쩡하다고? 순간 헛숨을 들이킨다.
"헉, 그런데 다친 데가 없어요?"
"몸은 튼튼하니까…."
"아니, 몸이 튼튼한 거로 해결될 게 아니잖아요. 어디 좀 봐요. 다친 데 없는지."
나는 그의 말을 자르고 가까이 다가가 입고 있는 옷을 들친다. 그의 하얀 몸에는 멍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이게 어딜 봐서 건물 옥상에서 떨어진 사람의 몸인가? 생긴 건 멀쩡해서 무슨 거짓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또 몸은 근육이 잘 잡혀서 부럽게…. 그러다 무심코 너무 몸을 빤히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부끄러워진다. 급하게 그가 입고 있는 옷을 제자리에 내려놓고 물러서 앉았다. 얼굴이 빨개진 건 아닐지 모르겠다. 피부에 열감이 느껴져 그의 눈을 슬쩍슬쩍 피하며 이야기한다.
"다친 데는 없네요. …. 거짓말하는 것 같은데 말이죠."
"거짓말은 안 해. 널 따라가야겠다는 생각만 해서 실수했어. …. 평소에는 안 이래."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유달리 그가 부끄러워하는 게 보인다. 실수하는 걸 남에게 들키기 싫어하는 사람인가? 아무튼 거짓말은 아니라고 믿어주자. 아니, 믿어주는 척인가?
"그런데 도대체 몇 살이에요? 저보단 많아 보이는데…."
"글쎄? 센 적이 없어서 모르겠네. 그래도 지구보다는 많으니까 46억 이상…?"
여기까지 그의 말을 듣고 든 생각은 '생긴 건 정상적인데 아무래도 머리가 좀 이상한 것 같다.'이다. 도대체 지구보다 나이가 더 많다는 말을 어떻게 믿으라는 거지? 참 미치는 것도 체계적으로 미쳐서 사람을 곤란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 그런데 어디 갈 데는 있어요?"
"아니, 없는데…."
아무래도 사정은 있는 모양인데, 이대로 쫓아내는 것도 조금 불쌍한 느낌이고 어쩔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선심을 쓰기로 한다.
"흠, 그럼 오늘은 우리 집에 있어요."
"고마워. …. 그러고 보니 이름도 못 들었네."
"전 선우 진이라고 해요."
시계를 보니 벌써 7시가 됐다. 일단 그에게 밥을 먹자고 한 뒤, 오늘 사 온 볶음밥 두 개를 데우기로 했다. 이윽고 식탁에서 마주 보고 다 데운 밥을 같이 먹는다. 먹는 건 평범하게 먹는구나. 정신이 이상해 보여서 먹는 방식이 특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사람에게 선입견을 가지다니 이건 좀 반성해야 겠다. 아무튼 밥을 다 먹고 설거지에 샤워까지 다 하고 나니 벌써 10시다. 이제 잘 시간이 됐다.
"전 이제 잘 시간인데…. 어디서 잘래요?"
"일찍 자는구나."
"쉴 때는 일찍 자야 해요. 안 그러면 몸이 못 버티니까."
나는 당연하게 이야기한다. 왜냐하면 퇴마사 일은 고달프기 때문이다. 평상시에는 잠도 제때 잘 수 없고 밥도 먹을 수 있을 때 먹어둬야 한다. 그래서 쉬는 날만이라도 평범하게 지내고 싶은 것이다. 뭐, 이런 사정까지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지? 그런데 일단은 손님인 것 같은데 침대를 내줘야 하는지 고민이다.
"침대에서 잘래요? 나는 소파에서 자도 되니까."
"아니, 내가 소파에서 잘게."
"알겠어요. 그러면 잘 자요."
방에 들어가면서 인사를 한다. 그는 말없이 소파에 앉아 미소를 짓는다. 다시 봐도 생긴 건 잘생겨서 쓸데없이 설레게 한다. 이렇게 어수선할 때는 일단 잠을 자는 게 낫다. 나는 얼른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잠을 청한다. 내일은 어떻게 할지는 내일 생각하자.
…….
불이 꺼진 거실, 소파에 앉아 오늘을 되돌아본다. 아무래도 오늘 설명했던 것이 그에게 와닿지는 않았던 거 같다. 뭐, 언제나 비슷하게 시작했으니까 그래도 괜찮다. 이전 영혼의 소유자는 70년 전에 나타났었지. 정말 오랜만에 만나 너무 들떴었다. 오죽하면 발을 헛디뎌 건물에서 떨어지기까지 했을까. 하지만 그 덕에 이렇게 그의 집 안까지 들어왔으니 새옹지마라던가 그런 것이겠지. 나는 조용히 읊조리듯이 말한다.
"드디어 만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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