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에 알림이 울려 화면을 보니, 협회에서 문자로 의뢰를 보냈다. 퇴마사 협회에 소속해 있는 사람은 이렇게 의뢰를 배정받는다. 협회가 사람에 맞춰 적당하다고 판단하는 사건을 개인에게 연결해 주는 것이다. 나는 그냥 옆에서 이야기만 전해 들어서 잘 모르지만, 개인으로 일하는 사람은 직접 홍보를 하는데 돈과 시간을 많이 들이는 데다 홍보할 수단도 많이 없어서 고충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협회를 통하지 않고 일하는 사람은 유명한 몇 명을 빼고는 많이 없다고 들었다.
의뢰 내용은 대충 이렇다. 예전에 불이 나서 전체가 타버린 건물이 있는데, 그걸 철거하려고 하면 방해하려고 하는 듯 이상한 일이 생긴다는 것이다. 문자를 자세히 보니 제법 멀리 나가야 한다. 이번 목적지는 대전이다. 인터넷으로 길을 찾아보니 여기서 KTX를 타고 1시간 정도 걸린다고 나온다. 이런 먼 거리는 나한테 잘 안 돌아오는데, 아무래도 이 일을 맡을 퇴마사가 근처에 없는 모양이다.
하루 머무를 정도의 짐을 가방에 챙기고 집을 나서려 하니, 아인이 내 앞을 가로막는다.
"오늘도 막는 거예요?"
"당연하지. 혼자서는 위험해."
솔직히 이제까지 혼자서 잘 해왔는데, 이렇게 누가 위험하다고 막아서는 걸 보면 오히려 불만이 생긴다. 오죽하면 내가 그렇게 믿음직하지 못하는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거기다 데려가고 싶다고 해도 아인은 외부인이다. 현장에 그렇게 함부로 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원래 퇴마는 최소한의 인물로 하는 게 좋은데, 그게 귀신을 최대한 자극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번 수귀 때도 위험했잖아?"
"그건 예상치 못하게 귀신이 강해서 그랬던 거고요. 외부인은 원칙상 출입금지예요."
"그래도 같이 갈 거야."
그의 표정을 보니 아무래도 나를 혼자 보내지 않기로 굳게 마음먹은 모양이다. 하지만 저번은 약속 시각까지 얼마 안 남아서 그냥 같이 갔던 것이고, 이번은 도착하는 시간까지 아직 여유가 있으니 그를 떼어놓고 가야 한다. 저번과 다르게 나도 강하게 말한다.
"어린아이도 아니고 떼쓰는 건 아니지 않아요?"
"떼쓰는 거라도 해서 같이 가고 싶으니까…."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돼요."
내가 계속 강하게 나가자 그의 표정이 변하며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저렇게까지 표정이 눈에 보일 정도로 변하는 건 처음 보는 것 같다. 고개를 조금 숙이고 말없이 나의 얼굴만 슬금슬금 보는 걸 마주하고 있자니 무슨 버려진 강아지 같다.
"그렇게 쳐다봐도 안 돼요."
"…. 그래도 도움은 됐었잖아."
그는 우물쭈물하더니 이렇게 말한다. 그의 말대로 물귀신을 상대할 때는 도움을 받았다. 솔직히 귀신에게 물리력을 행사하는 얼음은 도움이 된다. 나는 가만히 서서 곰곰이 생각해 본다. 그를 데리고 가는 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퇴마 일에는 최소한의 사람만 가야 하고, 외부인은 끌어들이지 않아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이 두 개의 생각을 저울질해 본다. 어느 것이 나에게 더 이익이 될지를 말이다.
생각하는 데에 아주 오랜 시간을 들일 수는 없다. 나는 이번에도 내 편함을 위해 외부인을 끌어들이기로 한다.
"도움 됐던 것도 사실이긴 하고…. 그럼 준비해요."
"알겠어!"
그가 이제까지 들은 적 없는 크기의 목소리로 말한다. 내가 허락한 것이 정말로 기쁜 모양이다. 저러니까 대형견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재빠르게 옷을 갈아입고 집에 남아있는 가방에 간단히 짐을 챙겨서 현관으로 나왔다. 평소 집에 있을 때는 편안한 차림으로 있는 사람이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나니까 멀끔해 보인다. 그런데 옷차림이 계절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지금 하얀 롱코트에 안에는 검은색의 목까지 감싸는 티와 통이 조금 작아 다리 라인이 조금 보이는 정장 바지를 입고 있다. 같이 지낸 지 벌써 2주가 넘었는데 그의 외출복이 이렇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 다 됐어요?"
"응, 출발해도 돼."
우리는 이른 아침부터 버스를 타고 기차역으로 향한다. 그의 옷차림이 여름과 어울리지 않기에 지나가는 사람의 이목을 끈다.
"덥지 않아요?"
"괜찮아. 왜?"
"아니…. 다음에 시간 내서 옷이나 사러 가죠."
당연하다는 듯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그에게 할 말이 머릿속에서 사라져 그냥 그러고 말았다.
기차역에 도착해서 KTX용 표 두 장을 사서 기차에 몸을 싣는다. KTX는 빠르게 달려 어느새 대전에 다다랐다. 나는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정확한 위치를 묻기 위해 의뢰인에게 전화한다. 신호음이 두 번 울리자 전화를 받는다.
"…. 여보세요?"
전화를 받은 건 나이가 제법 든 것 같은 목소리를 가진 남자다. 받고 나서 잠시 침묵하는 걸 보니 조금 긴장한 것 같다.
"의뢰를 받은 퇴마사입니다. 정확한 위치 좀 알려 주시겠습니까?"
"아, 네. 문자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1분도 지나지 않아 문자가 도착한다. 장소를 받은 나는 아인을 끌고 택시가 잔뜩 서 있는 곳으로 가서, 제일 앞에 있는 택시에 올라타 나이 든 남자 기사님에게 주소를 보여주니 바로 출발한다. 목적지로 가는 택시 안은 정적이 흐른다. 어지간하면 말을 걸 법도 한데, 그런 것도 없었다. 10분 정도 달려 택시가 목적지에 도착한다. 나는 만 원을 지갑에서 꺼내 기사님에게 건네주고 거스름돈을 챙겨 내린다.
도착한 장소에는 새까맣게 그을린 2층 주택이 있는데 겨우 저게 주택이란 걸 알아볼 수 있을 정도다. 건물에 들어가기 전에 밖에서 상태를 보고 있자니, 금세 우리의 가까운 곳에 승용차가 선다. 차에서 내리는 사람은 배가 좀 나온,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다. 아무래도 저 사람이 의뢰인인 모양이다. 그는 우리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아인을 향해 손을 뻗는다.
"어서 오십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인은 고개를 돌려 나를 본다. 그의 표정이 어떻게 하면 좋냐고 물어보는 것 같아 나는 그냥 고개를 작게 끄덕인다. 그러자 아인은 의뢰인의 손을 잡으며 자연스럽게 인사를 한다.
"네, 반갑습니다. 급하게 오셨을 텐데 죄송하지만, 자세한 상황을 알고 싶습니다."
"물론 말씀드려야죠."
그는 미소를 지으며 의뢰인에게서 말을 끌어낸다. 그게 아주 자연스러워서 이 상황을 누가 보고 있다면 나는 그냥 따라온 사람으로 보일 정도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옆에서 둘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있다.
의뢰인의 말에 따르면 옛날에 화재를 진압하고 이곳에 진입했을 때, 안에서 한 사람이 죽은 채 발견됐다고 한다. 그런데 제법 오래 폐허로 있었던 이 땅을 의뢰인이 사들이고, 철거할 때 문제가 생겼단다. 건물을 허물려고 포클레인을 불렀는데, 그게 갑자기 작동을 안 하더라는 것이다. 포클레인을 그 장소에서 떨어뜨려 놓으면 멀쩡하게 작동하는데, 이 장소만 오면 멈춘다고 한다. 거기다 여기에 공사를 하러 왔던 인부들이 다치는 사고까지 있었다고 의뢰인이 말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무래도 기계에 영향을 줄 정도로 기운이 센 귀신인 모양이다. 일단 지금 제일 의심스러운 건 죽은 채로 발견된 남자의 귀신이다. 당장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은 주택을 쳐다보니 음기가 가득하다. 지금 내 눈앞에는 잡귀까지 보인다. 나는 가방에서 축귀부 한 장을 꺼내 의뢰인에게 건넨다.
"이거, 가지고 있으세요. 잡귀가 오는 걸 막아줄 거에요. 한…. 한 달 정도 지나면 꼭 불로 태우세요."
남자는 어리둥절하고 있지만, 일단 부적을 받아든다. 내가 건넨 저 부적은 양기를 끌어들이고, 약한 귀신을 쫓는 것이다. 이걸로 여기 자주 드나들었던 의뢰인에 대한 걱정은 일단 해결이 될 것이다. 그가 말은 안 했지만, 이런 음기가 가득한 곳에 자주 드나들었으니 몸에 잡귀가 많이 붙어 본인 주위에서 안 좋은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
"일단은 돌아가 있으세요. 여긴 위험한 곳이니까요."
내가 이렇게 말하지만, 그 남자는 아인만 빤히 쳐다본다. 그러자 아인은 내 말에 맞장구치듯 고개를 주억인다. 남자는 그제야 알았다고 하며 차를 타고 이 장소를 떠난다. 일반인도 갔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퇴마를 할 시간이다.
우리는 조심하며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오래전에 불탄 것은 정리했는데도 탄내가 온 데 진동을 하는 것 같다. 나는 공사를 방해하는 원인으로 추정되는 귀신이 어디에 있을지 모르니 천천히 주변을 둘러본다. 뒤를 쳐다보니 아인도 내 뒤를 따라오며 주변을 날카롭게 주시하고 있다.
1층은 여러 가구가 살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정확하게는 작은 집이 3개 있는 거 같았다. 집 안을 살펴보니 중간에 벽이 무너져 그냥 추측만 할 뿐이다. 아무튼 1층을 샅샅이 살펴봤지만, 있는 거라곤 금방 쫓아낼 수 있는 잡귀뿐이다.
우리는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계단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은 한 가구만 살도록 만들어진 모양인지, 현관을 들어서자 커다란 거실이 보인다. 우리는 갈라져서 기계를 멈출 정도로 강한 음기를 찾아보기로 한다. 내가 부엌으로 향하자 그는 방을 살펴보러 들어간다. 남은 것도 없이 새까맣게 그을린 벽면과 가구들을 보자니 '불은 무서운 거구나.' 하는 감상이 든다. 나는 잡귀가 붙으려는 걸 쫓아가며 부엌과 다른 방을 둘러본다. 하지만 여기선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집 안을 돌아다니는 걸 멈추고 서로 말없이 바라본다. 이 정도로 들쑤시고 다니면 귀신이 나올 법도 한데 그런 기미가 없다. 계속 여기 있으며 나오기를 기다려야 하나? 아니면 포클레인이라도 불러서 직접 끌어내야 하나?
그를 바라보며 어떻게 하면 될지 고민하는 와중, 갑자기 1층에서 미약하게 기운이 움직이는 걸 느낀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서 급하게 계단을 내려가 움직이던 기운을 찾아본다. 가까운 쪽부터 문을 열 때, 중간에 있는 집에서 강한 기운이 뻗어 나오는 것을 느낀다. 서둘러 그 집의 문을 밀어 열려고 했지만, 열리지 않는다. 아무래도 문을 안에서 걸어 잠근 모양이다. 나는 문 앞에서 어떻게 귀신을 밖으로 끌어낼지 고민한다.
기척이 느껴져서 돌아보니 아인이 어느새 곁에 와서 이 상황을 보고 있다. 그는 가만히 문을 쳐다보더니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 저걸 부술까?"
"좀 더 얌전한 방법은 없을까요?"
"나는 그다지 떠오르는 게 없네."
그도 별 방법이 없는 모양이다. 그나저나 부수는 방법부터 생각하다니 의외로 성격이 급한 면도 있구나…. 아무튼 방법을 생각해보자. 저 문은 안에서 잡긴 것이던가, 강한 기운으로 막는 것 중 하나다. 강한 기운으로 막은 것이라면 기운을 풀어내고 들어가야 하고, 단순히 안에서 잠긴 거라면 열쇠가 없는 지금은 진짜 부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문을 부쉈다가 괜히 귀신을 자극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가만히 서서 문을 바라보며 고민만 하고 있자니 그의 기척이 움직이는 걸 느낀다. 고개를 돌려 그를 보니 어디 구석에서 쇠파이프를 주워드는 게 보인다. 그는 문 앞에 다가가더니 천천히 파이프를 치켜들고 문손잡이를 내려친다.
"그렇게 하면 귀신을 자극하잖아요!"
"이대로 계속 있을 수도 없잖아."
"그건 그렇지만…!"
"걱정 마. 위험하면 내가 지켜줄게."
그는 나를 보며 미소를 짓고는 다시 문고리를 파이프로 반복해서 친다. 나는 그의 말이 황당해서 미처 말릴 생각은 못 하고 그냥 쳐다본다. 그가 내려치는 걸 몇 번 반복하니 손잡이가 너덜너덜해서 이윽고 떨어진다. 그걸 보고는 그가 문을 발로 세게 차기 시작한다. 그러자 문이 덜컹거리더니 금세 열린다. 인제 보니 그는 힘이 제법 센 것 같다.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상황을 보고만 있을 때, 나는 문 너머의 거실에 있는 귀신을 발견한다.
귀신은 고개를 숙이고 무언가 중얼거리고 있다. 그런데 행색이 불에 타서 죽은 거라고 보기엔 너무 깨끗하다. 거기다 머리만 붉게 피가 흐르고 있다. 귀신은 죽을 때 모습을 간직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 행색을 보아하니 죽은 원인이 화재가 아닌 듯하다. 뭐, 그런 걸 따져도 이미 죽은 귀신에게 의미는 없지만 말이다.
나는 퇴귀부를 품에서 꺼내며 귀신을 상대할 준비를 한다. 그런데 문을 억지로 부쉈는데, 귀신의 반응이 없다. 저러면 문을 애써 막은 이유도 없는 것 아닌가? 아무튼 조심하며 귀신에게 다가간다. 저번처럼 던지는 것은 받아칠 것 같은 강한 기운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직접 붙이는 거로 어떻게든 해볼 수밖에 없다.
내가 다가가자 귀신의 중얼거림이 더 크게 들린다. 하지만 그런 걸 들어줄 생각은 없다. 이형의 존재는 무슨 이유가 있든 없어져야 한다. 그게 귀신이든 요괴든 나에게는 상관없다. 한 발, 한 발 귀신과 거리를 좁힌다. 아직 무슨 반응을 하지는 않는다.
이제는 귀신과 나 사이의 거리가 굉장히 가까워서 손을 뻗으면 금방 닿을 것 같다. 기회는 이때라고 생각해서 부적을 귀신에게 붙이려고 하니, 고개를 쳐들고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고는 엄청난 고함을 친다.
"죽고 싶지 않아!"
너무 강한 기운에 강풍이 불듯 몸이 떠밀려 나간다. 그 자리에서 조금 날아가는 것 같더니 뒤에서 누가 받쳐주는 걸 느낀다. 슬쩍 고개만 돌려 뒤를 바라보니 아인이 내 뒤에 있다. 저 귀신, 저번 물귀신보다 강한 게 아닐까?
나는 다시 앞을 바라본다. 귀신은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천천히 다가온다. 아무래도 목표는 나인 것 같다. 나는 그의 품에 안긴 채 일단 부적을 던져 본다. 하지만 예상대로 부적을 그 음기로 받아 쳐낸다. 나는 일단 넓은 장소로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일단 밖으로 나가요!"
그도 고개를 끄덕이고 집 밖으로 나간다. 아무래도 이렇게 좁은 곳에서는 마음대로 움직이기 힘들다. 우리가 집 밖으로 나가자 귀신도 천천히 따라 나온다. 견제하기 위해 부적을 한 장 더 던지지만 역시나 소용이 없다. 거기다 팔을 이용하는 것도 아니고 기운으로 떨쳐낼 정도라니 보통 강한 게 아니다. 솔직히 퇴귀부가 잘 들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고민을 하며 가만히 귀신을 지켜보자니 아인이 갑자기 손을 뻗는다. 그러자 귀신의 양 다리가 얼어붙어 넘어진다.
"내가 어떻게든 할게."
"어떻게요?"
그는 말없이 다시 손을 뻗는다. 그러자 귀신은 다리부터 얼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기어 오려는 팔까지 순식간에 언다. 나는 멍하니 그 과정을 지켜볼 뿐이다.
"자, 이제 어떻게든 할 수 있지 않을까?"
"…. 뭐랄까, 딴지 거는 것도 이제는 힘드네요."
내가 이렇게 말하자 아인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확실히 그가 귀신을 얼리자 음기가 아주 많이 약해졌다. 나는 얼어버린 귀신에게 다가가 팔과 다리, 머리, 몸에 부적을 한 장씩 붙인다. 얼음에 쌓여 효과가 있을까 싶었는데, 서서히 귀신이 타들어 가 없어진다.
"…. 덕분에 해결했네요."
"내가 따라오길 잘했지?"
그의 표정이 마치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다. 저렇게 직접적으로 보이니 좀 열 받는 기분도 들지만, 확실히 그의 능력은 도움이 됐다. 이렇게 쉽게 해결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아무튼, 귀신이 사라지자 뭉쳐있던 음기도 많이 풀렸다. 그 귀신이 원인이 맞긴 했나 보다. 나는 문자로 협회에 상황을 설명한다. 일단 퇴마는 했지만, 아직 음기가 많아서 굿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이다. 일을 다 마치니 벌써 해가 저물고 있다.
"오늘은 좀 늦었으니 그냥 머물고 올라가죠. 급하게 올라갈 일도 없으니까요."
전화로 택시를 부르곤 이렇게 말하니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근처에 서서 조금 기다리고 있자니 택시가 도착한다. 우리는 그걸 타고 기차역 근처로 돌아간다. 택시 기사님에게 머물 만한 곳이 있냐고 물어보니 좋은 모텔이 몰려있는 곳으로 데려다준다. 이럴 때는 순순히 도움을 받는 게 편하다.
우리는 근처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한 모텔을 정해 들어간다. 안에 들어가니 남자가 카운터를 지키고 있다. 혼자서 다닐 때는 미성년자라고 쫓아내기 때문에 들어올 수가 없는데, 오늘은 다르지 않을까 하며 긴장한 체 그 사람에게 말을 건다.
"두 사람이요."
카운터에 앉아있던 사람은 우리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아인은 괜찮겠지만, 나는 아무래도 어려 보여서 통과하기 힘들려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그 사람은 쳐다보는 걸 멈추고 아무 말 없이 열쇠와 일회용품들을 챙겨준다. 옆에 적혀있는 데로 지갑에서 돈을 꺼내 카운터 위에 올려놓으니 손만 나와 돈을 챙겨간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온 나는 난생처음 들어온 모텔을 구경하듯 둘러보며 열쇠에 적힌 방을 찾는다. 아인은 내 뒤를 따라오고 있다. 슬쩍 돌아보니 표정에 그다지 변화가 없다. 어쩐지 익숙해 보이기도 한다. 하긴 자기 스스로 나이가 많다고 했으니 이런 데도 와봤으려나? 나는 금방 방을 찾아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간다.
방으로 들어가니 큰 침대 하나와 텔레비전, 탁자 하나에 의자 두 개, 작고 하얀 냉장고가 보인다. '모텔 안을 이렇게 돼 있구나.' 하는 감상을 하고 있자니 아인이 말을 건다.
"퇴마한 것 때문에 피곤할 텐데, 얼른 씻고 자는 게 좋을 것 같네."
솔직히 그가 다 해결해서 별로 피곤하지는 않지만 일단 샤워는 하고 싶어져서 그가 챙겨주는 가운을 들고 욕실에 들어간다. 욕실은 온통 하얀데 정돈이 잘 돼 있고 깨끗해 보인다. 나는 옷을 벗어두고 샤워기 아래에 서서 물을 튼다. 다 씻고 나서 받아들고 온 흰 가운을 보며 조금 고민을 한다. 이거만 입으면 이상한 거 아닌가? 그래도 벗어둔 속옷을 다시 입고 싶지는 않아 일단 가운만 입고 욕실을 나선다. 가운이 제법 길어서 무릎까지 가리는지라 다행이다.
"아인도 씻을래요?"
내가 가방을 뒤적거리며 묻자 그는 가운을 들고 욕실로 들어간다. 다행히 속옷을 갈아입을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가 씻는 동안 가방에서 옷을 꺼내 갈아입고, 입었던 옷을 정리한 뒤 침대에 눕다시피 기대 텔레비전을 튼다. 별로 재미있는 것을 할 시간은 아니기에 리모컨의 버튼을 누르고 있자니 갑자기 여자 알몸에 야한 소리가 텔레비전에서 나온다. 나는 그가 들을까 싶어 얼른 채널을 다시 돌린다.
왠지 죄를 지은 것 같아 얌전히 누워있자니 그가 가운을 입은 채로 나온다. 조금만 채널을 늦게 돌렸으면 그가 볼 뻔했다. 다행이다 싶어 한숨을 쉬니 그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나는 내가 느끼기에도 어색하게 웃고 만다. 그는 가방에서 옷을 꺼내더니 나에게서 몸을 돌리고 가운을 벗는다. 그 행동에 순간 깜짝 놀랐지만, 그의 등 전체에 있는 문양을 보고는 거기에 시선을 집중한다.
"등에 그건 뭐예요?"
"아, 이건 몸에 흐르는 마력을 조절하는 진이야. 이렇게 조절을 하지 않으면 몸에서 냉기가 흘러나와서…."
"…. 풀린 걸 볼 수 있어요?"
순간 궁금해져서 물어보니 그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가 말하길 목숨이 위험할 정도라면 몰라도 자기 마음대로 풀리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이게 풀리면 주변이 다 얼어붙을 정도라고 하는데, 그 말은 풀렸던 적이 있다는 거겠지? 이제까지 봐온 그를 생각하면 상상이 안 떠오른다.
휴대전화로 시계를 보니 어느새 잘 시간이 돼 불을 끄고 침대에 나란히 눕는다. 옆에 사람이 있으니 안정이 안 되지만, 눈을 감고 일부로라도 잠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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